남자를 단련하는 말
저자: 사쿠라이 쇼이치(桜井章一)
※ 원본 스캔 PDF를 직접 판독하여 새로 번역한 한국어판입니다.
※ PDF의 쪽 번호를 기준으로 구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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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단련하는 말
사쿠라이 쇼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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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단련하는 말
사쿠라이 쇼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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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입버릇처럼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가끔 본다. 만나자마자 “죄송합니다”, 돌아갈 때도 “죄송합니다”라고 한다. 지금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몸에 익힌 직장인 특유의 처세술이라고 해야 할까. 직업상 어쩔 수 없다고 하면 그만이지만, 그렇게 “죄송합니다”를 되풀이하는 남자를 두고 멋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얼마 전에는 ‘초식남’이라는 말이 화제가 되었고, 한편으로는 여성이 ‘육식녀’가 되는 현상도 나타났다. 여성은 강해져만 가고 있다.
남녀평등을 외친 지도 오래되었지만, 지금 사회에서는 남존여비가 아니라 오히려 여존남비가 진행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자민당은 지난 중의원 선거에서 “2020년까지 지도적 지위에 있는 여성의 비율을 30% 이상으로 높이겠다”는 공약을 내걸었고, 아베 내각은 당 4역 가운데 두 자리에 여성을 기용했다.
최근에는 우리 도장에서도 여성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작귀류 한도(漢道) 마작도장 패의 소리’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지만, 요즘에는 몇 명 안 되는 여성에게 남성 도장생들이 압도당하는 때도 있다.
‘한도’, 즉 남자의 길이라는 간판을 짊어지고 있는데도 남성 도장생들은 여자에게 약한 사람들뿐이니 조금은 한심한 노릇이다.
작귀회의 회장으로서 나는 도장생들에게 ‘남자의 등’이라는 것을 보여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머리로는 ‘남자’가 무엇인지 이해하더라도, 지금 사회에서 그것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는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남녀평등이라는 사고방식은 이제 흔들릴 수 없는 사회의 상식이다. 하지만 나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녀평등이라는 관념에 선뜻 동조할 마음은 없다. 물론 사회제도에서 성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다만 남녀평등이라는 관념이 불러오는 부정적인 면은 신경 쓰인다.
예를 들면, 본래 남자와 여자가 각각 지니고 있던 영역이 모호해지면서 아주 먼 옛날부터 이어져 온 인간의 근원적인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이 사라져 가는 것도 그중 하나일지 모른다.
오늘날 사회에서 ‘여자다움’이라는 말을 꺼내면 차별이라며 비난받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각자의 DNA에 새겨진 남자의 영역과 여자의 영역이 있다.
그것을 각자의 ‘역할’로 받아들여도 좋다. 각자가 자기 역할을 온전히 수행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균형은 유지된다.
남자와 여자가 계속해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면 사회의 균형이 무너지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 세상의 불안정함은 그러한 균형 상실이 초래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나는 ‘멋있게 보여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남자답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은 중요하게 간직해 왔다.
남자의 영역이란 과연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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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답게’ 살아가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책에 적은 말들이 당신 안에 있는 ‘남자다움’을 끌어내어, 세상의 균형을 바로잡는 하나의 힘이 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사쿠라이 쇼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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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동쪽의 장 - 멋을 아는 남자
· 인생의 현장에서 도망치지 마라
· 각오를 굳히지 마라
· 무게중심을 낮춰라
· ‘일단’이라는 감각을 가져라
· ‘자기 자신’을 팔면 인생을 망친다
· 멋없는 남자가 되지 마라
· 좋은 남자의 그릇은 크기가 자유롭게 변한다
· 꾸밈없이 살아라
· 자신을 배신하지 마라
· 권위에 기대어 살지 마라
· 바쁘다는 것을 자랑하지 마라
·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마라
· 만족을 버리고 자신의 분수를 알아라
· 무작정 애쓰지 말고 궁리하라
· 남자에게 도락은 필요한가
· 이기는 남자가 아니라 지지 않는 남자가 되어라
· 멋지게 져보아라
· 고집을 부리는 것은 볼썽사납다
· 자기 페이스대로 살지 마라
· 물러날 때란 힘을 뺄 때다
· 무인도에서 살 수 있는가
남쪽의 장 - 바라지 않는 남자
· 분해서 흘리는 눈물은 멋없다
· 튀어나온 말뚝이 되었다면 때로는 스스로 머리를 두드려라
· 캐치볼을 즐길 수 있는가
· 지식을 의심하라
· 이름 모르는 꽃
· 남자는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 느긋하게 걸어라
· 문제는 고마운 것이다
· 욕망을 다스려라
· 말끔한 얼굴을 한 것을 조심하라
· 자신을 믿지 마라
· 우연을 기대하지 마라
· 싫은 상대를 거부하지 마라
· 사물을 단순하게 만들어라
· 패를 드러내고 승부하라
· 답을 구하지 마라
· 시간과 좋은 간격을 유지하라
· 실수를 즐길 수 있는가
· 위험을 감수하라
· 긴장감을 몸으로 익혀라
· 솔직함과 남자다운 기개
서쪽의 장 - 소유하지 않는 남자
· 일부러 상대의 특기를 받아내라
· 지키려 하지 말고 받아들여라
· 몸가짐을 바르게 하라
· 편안한 길을 선택하지 마라
·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소중히 여겨라
· 너무 많이 이겼다면 양보할 여유를 가져라
· 아무것도 소유하지 마라
· 채우지 않는 것이 마음을 채운다
· 참지 마라
· 의미를 찾지 마라
· 모르는 것은 모르는 채로 두어라
· 남의 일을 자신의 일로 받아들여라
· 자유를 잘못 이해하지 마라
· 발바닥으로 흙을 느껴라
· 뜨거워지지 마라
· 함부로 남을 존경하지 마라
· 좋은 것에만 사로잡히지 마라
· 신념에 사로잡히지 마라
· 엄격함을 통과한 다정함을 가져라
· 아래를 보며 살아라
· 잘못된 경쟁을 하지 마라
· 더 나쁜 상태를 상상하라
북쪽의 장 - 흔들리지 않는 남자
· 좋은 몸가짐이 있으면 역경도 누그러진다
· 이어지는 흐름을 소중히 다뤄라
· 선입견을 갖지 마라
· 적은 자기 안에 있다
· 힘든 일을 즐겁게 하라
· 불의의 공격에도 흔들리지 마라
· 금지하는 것을 줄여라
· 단번의 역전을 노리지 마라
· 위기를 벗으로 삼아라
· 과거의 영광은 버려라
· 좋고 나쁨의 파도를 작게 만들어라
· ‘하면서’라는 감각을 받아들여라
· 움직임을 멈추지 마라
· 순간적인 힘이 운을 끌어당긴다
· 80퍼센트의 승리를 추구하라
· 두 번째, 세 번째 화살을 준비하라
· 약점을 극복하면 가능성이 곱절로 넓어진다
· 불안을 느끼면 즉시 움직여라
· 슬럼프는 내버려 두어라
· 불운과 행운을 구분하라
·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만들어라
· 미완을 좇아라
·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라
· 개인은 전체이며, 전체는 개인이다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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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의 장
멋을 아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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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현장에서 도망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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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러운 일과 힘든 일이 이어진 뒤 좋은 일이 생기면, 사람은 “인생도 버릴 게 아니구나”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고난이 너무 오래 계속되면 모든 것이 싫어지고, 끝내는 인생을 내던지는 사람도 나온다. 그 자리에서 벗어나는 정도라면 몰라도 자기 인생까지 내던지는 것은 이야기가 다르다. 자신의 손으로 자기 인생을 버리는 짓은 해서는 안 된다.
나는 이 목숨이 내 것이 아니라 자연으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생명의 등불이 다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받은 목숨을 온전히 써야 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인생의 현장’에 머무는 일이다. 현장에 있기 때문에 자연이 베풀어 준 삶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남자는 인생의 현장에서 도망치면 안 된다. 아니, “도망쳐서는 안 된다”는 관념과 “나쁜 상황에서 도망치지 않는 편이 내게 유리하다”는 얄팍한 계산이 생길 수 있으므로, 여기서는 단호하게 “도망치지 마라”라고 해두자.
남자는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인생의 현장에서 도망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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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오를 굳히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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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상황 앞에서 망설이는 사람에게 “단단히 각오하고 임해라”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나는 각오를 굳힌 채 맞선다고 해서 그 사람이 강해지는 것도 아니며, 근본적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거나 진전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무엇인가를 선택하면서 굳게 각오했더라도 그 선택이 잘못되었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궁지에 몰렸을 때 각오를 다지는 것 역시 단순한 체념이나 배짱에 지나지 않는다. 어느 경우든 아무리 마음을 굳게 먹어도 그 사람 자신은 여전히 약한 채다.
사람이 흑백을 분명히 가르고 싶어 하는 것은 그렇게 하는 편이 편하고 안심되기 때문이다. 흰색과 검은색 사이의 회색 지대에 머물면 불안과 걱정, 두려움이 커져 견딜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흑백을 가르고 싶어 한다.
정말 강한 사람은 그런 회색 지대 안에서도 살아갈 힘이 있다. 회색 지대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유연함과 부드러움을 지닌 사람은 결코 무턱대고 각오부터 굳히지 않는다.
“그렇다면 당신은 각오를 굳히지 않고 어떻게 합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이렇게 답한다.
“나는 배를 굳히는 대신 활짝 엽니다.”
배를 단단하게 굳혀 모든 것을 튕겨내는 것이 아니라, 배를 열듯 부드럽게 만들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게 일단 받아들여야 사물의 참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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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중심을 낮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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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세계에서는 흔히 “무게중심을 낮춰라”라고 말한다. 유도나 스모에서도 허리가 꼿꼿이 떠 있으면 상대에게 내던져지고, 다른 구기 종목에서도 무게중심이 낮은 공이 더 강한 힘을 낸다.
무게중심을 낮추는 일이 중요한 것은 스포츠뿐만 아니다. 살아가는 방식에서도 마찬가지다. 지식과 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이 사회에서 사람들의 무게중심은 온통 몸의 위쪽, 즉 머리로 올라가 버렸다.
무게중심이 머리로 옮겨간 덕분에 문명이 발달하고 과학이 진보하여 인류는 여러 혜택을 누렸다. 그러나 무게중심이 높아진 탓에 정신은 더욱 불안정해졌고, 예전 인류가 지니고 있던 생명체로서의 본능도 퇴화하고 말았다.
무게중심이 높아지면 시선도 높아지므로 현대사회에 자신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거만한 사람이 늘어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시선이 높다고 세상이 더 잘 보이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회에서도 시선이 높은 사람은 높은 범위 안에서만 사물을 보려고 하므로 오히려 사람과 세상 전체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앞으로 벌어질 인생의 여러 우발적인 사건에 대응하려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무게중심을 낮추는 것이 철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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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이라는 감각을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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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어느 정도 허세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조건 ○○하겠습니다!”처럼 ‘무조건’이라는 말을 붙이는 순간, 그것은 명백한 거짓말이 된다.
‘무조건’이라는 표현은 거짓말이 될 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기대치를 어쩔 수 없이 높인다. 나는 기대가 병적인 상태를 낳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조건’이라는 말도 쓰지 않고, 기대도 하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은 불확실함과 근거 없음, 모호함 속에서 살아갈 만큼 강하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절대적 확실성’이라는 관념을 가지려 한다. 하지만 기대에서 비롯되는 병적인 상태에 끌려가지 않으려면 ‘무조건’이라는 감각을 적당히 누그러뜨려 두는 편이 좋다.
그 관념을 옅게 만들려면 ‘일단’이라는 감각을 가지면 된다. “무조건 하겠습니다!”가 아니라 “일단 해두겠습니다” 정도의 마음이다. 물론 회사에서 상사에게 대놓고 “일단 해두겠습니다”라고 말하면 반감만 살 테니, 그런 때에는 어디까지나 마음속으로만 생각해야 한다.
‘일단’이라는 감각이 있으면 좋고 나쁨의 파도가 닥쳤을 때도 “일단 지금은 잘 풀리고 있을 뿐이야……”, “일단 지금은 나쁘지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기대하거나 비탄에 빠지지 않고 자신이 놓인 현실을 납득하게 되는 것이다. 인생에서는 그렇게 하나씩 ‘납득’을 쌓아가는 일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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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팔면 인생을 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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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많은 사람이 모이는 파티나 모임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서로 웃는 얼굴로 치켜세워 주고받지만, 그런 거짓된 공간에 몸을 두는 일은 도저히 견디기 어렵다.
예전에 어떤 파티에 참석했을 때도 내빈의 연설이 그 사람을 향한 아첨뿐이라 지루했다. 그래서 차례가 돌아왔을 때 나는 “어른들끼리 모이는 것은 재미없네요. 빨리 도장으로 돌아가 젊은 친구들과 놀고 싶습니다”라고 말해버렸다.
현대사회에서 남의 비위를 맞추는 일은 어떤 의미에서는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상투적인 수단이다. 하지만 나는 자신의 삶을 굽혀가면서까지 자신을 팔고 이 사회에서 살아갈 생각은 없다.
자신을 계속 팔아넘기면 마침내 ‘자기 자신’은 사라지고 만다. 내가 보기에는 지금 사회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어른들뿐이다.
자신의 삶을 관철하려 한다면 때로는 다른 사람의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무례하게 행동하거나 반감을 살 일을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남자에게는 남자만의 삶의 방식이 있다. 그 길을 관철하지 않으면 진정한 ‘자기 자신’은 사라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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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없는 남자’가 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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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는 동네에 ‘멋있는 남자’라 부를 만한 사람이 많았다. 내가 멋있다고 느낀 사람들은 대개 자기 기술 하나로 승부하는 장인이나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어른들이었다. 그들이 동네 사람들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어린 마음에도 ‘멋있다’, ‘나도 저런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지금 세상을 둘러보면 그런 ‘멋있는 남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멸종 위기종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 사람 참 멋있지”라고 말할 기회조차 사라진 것을 보면, ‘멋’이라는 개념 자체가 현대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멋’은 완전히 자취를 감췄지만, 그 반대인 ‘멋없음’은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멋있다는 것은 생기 있게 살아 있다는 뜻이다. 내가 보기에 생기 있게 사는 사람은 자신을 뒷전으로 둘 줄 아는 사람이다. 반대로 멋없는 사람은 자기 생각밖에 하지 않고, 눈앞의 승부와 손익에 집착하며, 원망이나 시기와 질투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지배당하는 사람이다.
“멋있는 남자가 되자.” 그런 생각 자체가 실은 이미 멋없다. 멋있는 남자가 되고 싶다면, 우선 멋없는 남자가 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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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남자의 그릇은 자유롭게 크기가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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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력이 있고 도량이 넓은 사람을 세상에서는 “그릇이 크다”고 한다. 반대로 옹졸하고 속이 좁으면 “그릇이 작다”는 비웃음을 사게 된다. 하지만 과연 그릇은 크면 클수록 좋은 것일까?
나는 남자로서 내 그릇이 큰지 작은지 잘 모르겠다. 내 ‘남자의 그릇’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맞춰 바뀌는 것은 그릇의 크기만이 아니다. 음식을 담는 그릇처럼 ‘지금 이 자리에 가장 어울리는 그릇은 무엇인가’를 늘 생각하면서, 내가 놓인 상황에 맞춰 색도 바꾸고 모양도 바꾼다.
특히 남자들은 “남자는 그릇이 커야 한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나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릇의 크기만 좇다 보면 도리어 겉모습만 그럴듯하게 꾸민 종이호랑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릇의 크기를 추구하지 말고, 상황에 맞춰 변할 수 있는 유연함을 지녀라. 결국 그것이 남자를 갈고닦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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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밈없는 ‘본모습’으로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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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재하는 마작 도장 ‘작귀회’에서는 모두가 꾸밈없는 모습으로 마작을 한다. 그렇다고 알몸으로 마작을 두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있는 그대로의 상태로 둔 채 마작을 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사람은 저마다 어떤 역할을 연기한다. 꾸밈없는 자기 모습을 드러내기 싫어서 무엇인가를 연기하며 자신을 위장한다.
회사에서는 사장 역할, 과장 역할, 영업사원 역할을 한다. 학교에서는 선생 역할과 학생 역할을 한다. 그렇게 배우가 배역 속으로 들어가듯 부모는 ‘좋은 부모’를, 자식은 ‘좋은 자식’을 연기하려 든다.
심리학에서는 그런 사회적 인격을 페르소나, 즉 가면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그러나 세상을 둘러보면 사회적 가면을 쓴 사람뿐이라, 내 눈에는 오히려 거짓된 모습으로 보인다.
오늘날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어느 정도 가면을 쓰지 않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화장을 했을 때보다 민낯일 때가 편하듯, 사람은 꾸밈없는 상태로 있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래서 작귀회 도장생들은 마작을 두면서 자신의 강한 면도 약한 면도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그렇게 본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 인간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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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배신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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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툭하면 약속을 깨.” 그런 사람은 주변의 신뢰를 잃고, 머지않아 외톨이가 되고 말 것이다.
약속을 어기는 사람,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만 배신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배신하고 있다. 그들은 그것을 모른다.
“그럼 몇 시 몇 분에 보자”라는 시간 약속도 상대와 약속하는 동시에 자기 자신과 약속하는 일이다. “그 사람은 약속 시간에 늘 늦어”라는 말을 듣는 사람은 자신과의 약속도 지키지 못하는 셈이다. 그러니 “내일은 몇 시에 일어나자”라는 자기 자신과의 약속도 계속 깨고 있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자신을 계속 배신하다 보면 약속 시간에만 늦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인생에도 늦고 만다.
나는 모든 일에 ‘때를 맞추는’ 삶을 관철해 왔다. 승부도 평소의 삶도 전혀 다르지 않다. 그래서 자기 자신과 한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킨다.
생각해 보면 인생은 자신과 맺는 약속의 연속이다. 목표나 뜻이라는 것도 모습을 달리한 하나의 약속에 지나지 않는다.
인생길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킴으로써 열리고, 그것을 계속해 나갈 때 사람됨이 갈고닦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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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에 매달려 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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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은 권위라는 것에 유난히 약하다. “도쿄대 출신입니다”라는 말만 들어도 “대단하네요”라고 할 테고, 대기업에 다니며 호화로운 집에 살면 ‘훌륭한 사람’으로 여긴다.
약육강식의 자연계에서는 ‘살아가는 힘’이 강한 것은 살아남고, 약한 것은 도태된다. 그러나 자연계와 단절된 인간 사회에서는 ‘살아가는 힘’이 약해도 권위를 손에 넣기만 하면 세상을 활보할 수 있다. 하지만 권위를 팔아먹고 사는 것은 허수아비처럼 뿌리가 없는 삶이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자리에서 “내 뒤에 누가 있는지 알아?”라고 허세를 부리는 건달이나, 거래처를 거만하게 대하는 대기업 사원이 “권위를 등에 업는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권위라는 우산 아래서 거드름을 피우지 않더라도, 명함을 내보이거나 지위에 집착하는 사람은 권위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권위주의에 갇힌 사람은 ‘괄호’ 안에서밖에 살 수 없다. ‘괄호’ 안에서 살면 우월감에도 젖을 수 있고, 주변의 보호를 받는다는 안도감도 있다. 하지만 그런 ‘괄호’ 안의 생활에 익숙해지면 한 인간으로서의 강인함은 갈수록 벗겨져 나간다. 인간의 ‘살아가는 힘’은 ‘괄호’ 밖에서야 비로소 길러지는 것이다.
===== PDF 31쪽 =====
‘바쁘다’는 것을 자랑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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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바빠서 말이야”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 사람을 가끔 본다. 그런 사람은 인간관계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바쁘다, 바빠”라고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주변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자랑하고 싶은 것이리라. 자신이 그만큼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바쁘다’는 것을 자랑할 여유가 있다면, 그보다 먼저 바쁜 상황에 감사하는 것이 어떨까.
바쁘다는 것은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그 때문에 사람이 움직이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류가 생겨난다. 반대로 누구에게도 필요하지 않게 되면 사람의 움직임은 멈춘다. 내게 사람이 움직임을 멈춘다는 것은 ‘죽음’을 뜻한다. 나는 살아 있으면서도 죽은 듯한 상태만큼은 결코 되고 싶지 않다.
작귀회 도장생들은 이런 나라도 필요로 해 준다. 나는 그것이 너무도 고맙고 또 고맙다. 그래서 아무리 분주하게 살아도 ‘바쁘다’고 느끼지 않는다.
사람은 바쁠 때가 한창인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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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일에 놀라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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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은 일을 지나치게 복잡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현대 사회에는 복잡한 것은 고상하고 단순한 것은 저속하다고 여기는 풍조가 있다. 그러니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복잡해지는 것도 어쩌면 어쩔 수 없는 일인지 모른다.
나는 무엇이든 단순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뜻밖의 일에도 재빨리 대응할 수 있고, 마음속에 망설임이나 불안도 생기지 않는다.
복잡해진 문제를 풀어 단순하게 바라보려 할 때, 나는 자주 아주 먼 옛날의 인류를 떠올린다. “수렵 시대의 인간이라면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현대 사회에서 복잡하게 얽혀 버린 문제의 본질이 보이고, 고민하지 않고도 이치에 맞는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일을 단순하게 볼 수 있다면 공포나 불안의 대부분은 자기 자신이 멋대로 만들어 낸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어릴 때는 주사를 맞을 때마다 울었더라도 어른이 된 뒤에 우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아이는 공포 때문에 주사의 아픔을 두 배, 세 배로 키운다. 마찬가지로 벌어진 일마다 지나치게 예민하게 놀라는 것은 머리로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자는 사소한 일에 일일이 놀라서는 안 된다.
===== PDF 35쪽 =====
만족을 버리고 제 분수를 알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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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의 차이를 들자면 끝이 없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차이 하나가 ‘납득과 만족’이라고 생각한다.
남자는 본래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정도겠지”라며 제 분수를 아는 경향이 있어 자기 자신에게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여자는 ‘만족’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서 무엇을 해도 성에 차지 않는다. 납득을 구하는가, 만족을 구하는가. 남자와 여자의 큰 차이는 여기에 있다.
제 분수를 아는 사람은 자신이 어느 정도의 사람인지 알기에 자기 역량에 맞는 삶을 살 수 있다. 이것은 수렵 시대부터 이어진 남자의 본능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렵 시대에는 눈앞에 큰 사냥감이 나타나더라도 그것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고 강하다면 도리어 자신이 죽을 수 있었다. 살아남으려면 자신의 역량을 알고, 그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남자의 수렵 본능이 돈을 향하게 된 뒤로 남자도 만족을 추구하게 되었다. 불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쌓아 놓고 자신을 과시하며 우쭐해한다.
‘족함을 안다’는 말이 있듯, 자신의 현재 모습을 납득하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욕망에는 끝이 없으므로 만족을 좇으면 인생은 괴로워질 뿐이다. 자기 역량을 알아야 다음에 해야 할 일이 보이고, 인생도 밝고 즐거워진다.
===== PDF 37쪽 =====
애쓰지 말고 궁리하라
===== PDF 38쪽 =====
나는 무슨 일을 하든 힘을 잔뜩 주지 않는다. ‘힘을 준다’는 것은 마음과 몸을 굳게 만들어 그 사람이 본래 지닌 힘을 절반으로 줄인다.
그래서 나는 ‘노력’이라는 말에도 위화감을 느낀다. “죽을힘을 다해 노력했습니다!”라는 악착같음에는 부자연스러운 힘이 들어가 있어 어딘가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사람의 사고와 동작은 힘을 뺄 때 매끄럽게 이루어지는 법이다.
“죽을힘을 다해 노력했습니다!”라고 말한 사람이 결국 실패한다면 어떻게 될까? 자신이 해 온 일이 헛되었다고 생각하며 필요 이상으로 깊이 낙담할 것이 틀림없다.
결과 지상주의 사회에서는 무엇보다 결과가 중시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좋은 결과를 얻으려고 눈에 불을 켠다. 부자연스럽게 힘이 들어간 상태로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는데도 말이다.
나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한다. 작귀회의 마작에서도 ‘점수를 많이 딴 사람’이 아니라 ‘좋은 마작을 한 사람’을 높이 평가한다.
“애썼지만 잘되지 않았다”고 해도 괜찮지 않은가. 애썼다는 것은 그 속에서 어떤 식으로든 ‘궁리’의 싹이 텄다는 뜻이다. 다음에는 그 궁리를 구체화하여 현실에 살리면 된다. 노력한다고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얻은 궁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남자를 한두 단계 더 크게 키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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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에게 도락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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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라면 취미를 한두 가지쯤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일 외에 취미를 가지면 세계관이 넓어지고 인생도 풍요로워진다는 뜻이겠지만, 나는 남자에게 취미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돈이 들지 않는 취미라면 그나마 괜찮지만, 요즘 어른들이 자랑스럽게 늘어놓는 취미는 돈이 드는 것뿐이다. 말하자면 취미라기보다 ‘도락’이다.
세상 어른들의 도락은 술, 여자, 도박에서 시작해 자동차, 낚시, 골프, 시계나 골동품 수집에 이르기까지 시대가 달라져도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다. 결국 도락이라는 것은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외로운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닐까.
남자에게 필요한 것은 취미도 도락도 아니라 ‘놀이’다. 아이들이 공원에서 온종일 놀듯, 돈을 들이지 않고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놀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작귀회에서 도장생들과 함께 몸을 쓰며 온종일 논다.
그렇게 모든 일에 놀이의 감각을 끌어들이면 일조차 놀이하듯 즐길 수 있다. “일을 놀이하듯 하지 마라!”라고 화내는 상사는 세상에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일은 ‘놀이 감각’으로 해도 된다. 놀이 감각이 있어야 마음의 여유와 자유로운 발상이 생기고, 좋은 일을 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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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남자가 아니라,
지지 않는 남자가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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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것’과 ‘지지 않는 것’. 결과적으로는 같은 뜻이지만, 싸움의 과정에서 그 본질은 전혀 다르다.
‘이긴다’는 욕망과 한계가 없으므로 상대를 철저히 때려눕히려는 방식이 된다. “상대가 약해졌으니 이제 됐다”고 여기지 않고, 상대가 쓰러진 뒤에도 공격을 계속한다. 그것이 ‘승리’를 추구하는 사람의 본질적인 방식이다.
반면 ‘지지 않는 것’은 지지만 않으면 되므로 일정한 한계가 생긴다. 자연계에서는 번식기가 되면 수컷들이 자신의 자손을 남기기 위해 격렬하게 싸움을 벌이지만, 어느 한쪽이 달아나면 싸움은 거기에서 끝난다. 요컨대 ‘지지 않겠다’는 마음은 동물이 지닌 본능에 가깝다.
‘이기겠다’는 생각은 현대사회의 욕망과 닮았다. ‘좋은 결과를 내야 한다’는 식으로 무턱대고 달라붙게 되고, 지저분한 싸움이나 비겁한 수를 쓰는 일도 아무렇지 않게 된다.
이기기만을 바라는 사람은 인생에서도 ‘얻는 것’만을 추구하게 된다. 그러나 얻은 것은 언젠가 잃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 잃는 일을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하거나 낙담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도 ‘지지 않는’ 삶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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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게 져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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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박이 심한 상황에서 긴장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사람이 긴장하는 것은 자신이 가진 힘 이상을 내려고 하거나, 자신을 더 좋아 보이게 하려 하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보다 그럴듯하게 보이려 하면 지나친 긴장을 피할 수 없다.
내가 모델이 된 영화나 만화를 본 사람에게 “사쿠라이 씨처럼 멋지게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멋진 승리’의 반대편에 있는 ‘꼴사나운 패배’를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예전에 나는 도장생에게 이런 조언을 한 적이 있다. 그 도장생은 상당한 실력에 이르렀지만, 거기에서 큰 벽에 부딪혀 발이 묶여 있었다. 내가 보기에 그의 싸움 방식은 처음의 ‘좋은 승부를 하자’는 자세가 아니라, 어느새 ‘멋지게 이기자’는 쪽으로 변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한번 멋지게 져봐라”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그 뒤의 대국에서 승리하여 벽을 넘어설 수 있었다.
‘멋지게 지자’고 생각하면 생각과 동작에서 힘이 빠지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남자의 삶에서도 ‘멋진 패배’를 의식하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멋이 배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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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을 부리는 것은 보기 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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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라면 고집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고집은 의기와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끝까지 이루려는 마음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고집이 없으면 여자로부터 “패기 없는 사람이네”라는 말을 듣게 된다.
고집을 갖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강해지면 “저 사람은 고집을 부린다”고 손가락질을 받게 되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어쩌면 고집을 부리는 것은 신념을 관철하는 일과도 통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고집을 부린’ 상태에 있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긴장’이라는 말도 ‘굳게 팽팽해진다’고 쓰듯, 잔뜩 긴장한 상태에는 여유가 없어서 임기응변으로 대응할 수 없다. 어디 한 곳이 무엇인가를 계기로 끊어지거나 갈라질 위험도 있다.
긴장한 나머지 머릿속까지 하얘지는 것도, 팽팽해진 상태가 파열되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의지는 ‘팽팽하게 당기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게 넓혀 두는 감각으로 지니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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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페이스로 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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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페이스’라는 말은 좋은 뜻으로도 나쁜 뜻으로도 쓰인다. 그러나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사람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내게 ‘마이페이스인 사람’은 그저 자기중심적으로 보일 뿐이다.
자신의 속도가 주변과 잘 맞으면 좋겠지만, 세상에는 여러 사람이 있고 사람마다 속도도 다르다. 그런데도 주변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속도만 고집한다면, 그것은 ‘제멋대로’라는 딱지가 붙어도 할 말이 없다.
내가 살아가는 방향 자체는 한결같지만, 가는 곳마다 주변의 속도를 흐트러뜨리며 살아서는 안 된다.
내 길을 걸으면서도 주변과 맞춰야 할 때에는 맞춘다. 그것이 단순한 ‘마이페이스인 사람’과 ‘자기 길을 가는 사람’의 차이다. 주변을 제대로 시야에 담으면서 태연히 자기 길을 가는 남자는 멋지다.
“너는 언제나 마이페이스라서 좋겠네.” 그런 말을 남에게 들었다면 주변에서 완전히 겉돌기 전에 자신의 삶을 다시 돌아보는 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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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날 때란,
집착을 뽑아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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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는 아이가 세상에서 잘나간다’는 말이 있다. 고령화 사회를 맞은 일본에서는 ‘밉상 노인’ 같은 정치가나 경영자가 늘어나는 한편이다.
‘노망난 노인’이라 비판받는 늙은이들은 예전부터 물러날 때를 맞고도 권력이나 명예를 아쉬워하며 남의 폐를 돌아보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해왔다. 그런 상태라면 세상 사람들에게 “추한 말년이다”라는 말을 듣는 것도 당연하다.
사람에게는 욕심이라는 것이 있으므로, 손에 넣은 것을 좀처럼 놓지 못한다. 손에 넣기 위해 애쓴 것일수록 쉽게 놓지 못하고 오히려 집착은 더 깊어진다. 물러날 때에도 손에 넣은 것에 집착한 나머지 떠날 때를 놓치고 만다.
나는 ‘물러날 때’를 의식하지 않고, ‘뽑아낼 것’을 파악한다. 주변에 달라붙은 것을 뿌리째 남김없이 뽑아내는 감각이다. 칼을 칼집에서 빼내듯 재빨리 힘을 주지 않고도 마음 편히 빠져나올 수 있다.
‘당기는 것’이 아니라 ‘뽑아내는 것’이라는 감각을 지니면 물러날 때를 제대로 가늠할 수 있고, 뒤늦은 후회나 괴로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그 뒤로 끌고 갈 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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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서 살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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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리 승부사로 혼자 계속 싸워왔기 때문인지, 잡지 같은 데서 가끔 ‘고독한 승부사’라고 소개되곤 했다.
분명 나는 줄곧 혼자 싸워왔지만, 그렇다고 고독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무엇보다 ‘고독’을 싫어한다. 대리 승부사로 살던 때도 승부 현장에서는 혼자였지만, 근거지로 삼던 여관에 돌아가면 동료가 있었고 집에는 가족이 있었다. 지금도 도장에서는 젊은이들에게 둘러싸여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 내게 동료는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그렇다면 사쿠라이 씨는 무인도에 표착하면 외로워서 살아갈 수 없지 않습니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착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내 동료는 인간만이 아니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동물도 내 동료다. 무인도에 표착한다면 매일 물고기와 접촉하고 바닷새와 대화하면서 분명 즐겁게 살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무인도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사는 일을 결코 고독이라 할 수 없다. 오히려 인공물에 둘러싸인 도시에서 사는 것보다 어떤 의미에서는 훨씬 활기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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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의 장
바라지 않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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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해서 흘리는 눈물은 멋지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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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울어도 되는 것은 부모가 세상을 떠났을 때뿐이다.”라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나는 남자도 마음껏 울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울보’라 불리는 나도 사람들 앞에서 운 적이 있다. 정말로 ‘귀신의 눈에도 눈물’이지만, 감정은 솔직하게 드러내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므로 나는 우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다.
강물처럼 사람의 감정도 흐른다. 마음이 평온할 때에는 잔잔하게 흐르고, 마음이 흐트러질 만한 일이 있으면 그 흐름은 거세진다. 희로애락에 따라 변하는 그 흐름을 가로막으면 감정은 갈 곳을 잃는다.
감정을 억누르거나 붙잡아 두는 일이 계속되면 그 흐름은 탁해지고 마음의 병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감정의 흐름을 맑게 유지하려면 울고 싶을 때에는 마음껏 울면 된다.
다만 단 하나, 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분해서 흘리는 눈물’이다. 그런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 생각밖에 하지 않는다.
분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옆에서 보면 ‘성실한 사람’이나 ‘노력가’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게는 자기 승리만 생각하는 몹시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인다. 남자가 우는 것 자체는 괜찮지만 분해서 흘리는 눈물만큼은 삼가는 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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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어나온 말뚝이 되었다면,
때로는 스스로 머리를 두드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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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어나온 말뚝은 두드려 맞는다”는 속담처럼, 이 사회에서 남다른 활약을 하면 이를 방해하거나 발목을 잡으려는 사람이 반드시 나타난다.
정치의 세계 같은 곳에서는 이것이 가장 심하다. 정치인들은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들을 위해 ‘정국’이라는 방해물을 만들고 발목을 잡느라 날이 저문다.
나도 대리 승부사로 활동하던 때에는 상당히 ‘튀어나온 말뚝’이었으므로, 나를 두드리려는 사람이 차례차례 나타났다.
“지면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런 싸움도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어떤 위협과 방해를 받아도 기죽지 않았다. 자신이 믿는 길을 걷는 한, 아무리 두드려 맞아도 남자가 주눅 들거나 마음이 꺾여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나이를 먹은 지금도 ‘어떻게든 더 튀어나온 말뚝이 되자’고 애쓰는 것은 아니다. 많은 책을 냈더니 “사쿠라이 씨의 책을 읽고 편안해졌습니다”라는 편지를 자주 받게 되었다. 그중에는 나를 무엇이든 해결해 주는 ‘신 같은 존재’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는 듯하다.
그러나 나는 신도 부처도 아닌, 그저 ‘마작장 아저씨’일 뿐이다. 마작장 아저씨로 남고 싶기에 요즘은 “조금 지나치게 튀어나왔나” 싶으면 스스로 머리를 두드려 튀어나온 말뚝을 다시 집어넣으려 한다.
===== PDF 58쪽 =====
캐치볼을 즐길 수 있는가?
===== PDF 59쪽 =====
작귀회에서 나는 매일 도장생들과 캐치볼을 즐긴다. 캐치볼이라 해도 야구처럼 실제 공을 던지는 것이 아니다. ‘말’이라는 공을 주고받으며 도장생들과 교류하는 것이다.
도장생 중에는 내가 던진 공을 제대로 조절해 되던지는 사람도 있고,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던져 버리는 사람도 있다. 바로 되돌아오는 공도 있고 한참 뒤에야 오는 공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내 가슴에 정확히 되돌아오는 공만을 ‘좋은 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러 공이 있으므로 캐치볼이 즐거운 것이다. 조절이 일정해져 마치 기계와 캐치볼하는 것처럼 된다면 그런 캐치볼은 틀림없이 곧 싫증이 날 것이다.
물론 도장생들에게 “내가 던진 공을 모두 제대로 받아라”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내 생각이 모두 옳을 리 없으므로 “그건 다르다”고 생각한다면 흘려보내도 좋고, 한쪽에 두어도 좋다. 이는 독자 여러분에게도 마찬가지다. 내가 ‘남자는 이래야 한다’고 말하더라도 “그럴까?” 하고 의문을 품어 주는 편이 저자로서는 오히려 고맙다. 남자의 길은 어디까지나 스스로 열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 PDF 60쪽 =====
지식을 의심하라
===== PDF 61쪽 =====
지금 사회에서는 어느 정도 지식이 없으면 “그런 것도 모르느냐?”고 수준 낮은 사람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나는 살아가는 데 필요하지 않은 지식은 가능한 한 내 안에 쌓아두지 않으려 해왔다. 지식이라는 것은 지나치게 많이 지니면 살아가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손에서 놓친 종잇조각이 땅의 어느 위치에 떨어질지를 정확히 알아낼 수는 없다. 지식을 아무리 쌓아도 기술이 아무리 진보해도 종잇조각이 어디에 떨어질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지식이 쓸모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지식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날마다 변하는 현실에 대응하지 못하게 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는 지식에 지나치게 의존한 ‘본부’와 현실에 대응해야 했던 ‘현장’ 사이의 괴리가 커져 혼란이 더 깊어졌다.
지식인들이 말하는 것이 모두 옳을 리 없다. 아니, 오히려 그들이 하는 말의 대부분은 지적 욕구를 채우기 위한 ‘지식’이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가 아니다.
지식에 치우친 머리로만 움직이면 균형이 무너지고 발밑은 불안해진다. 다양한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지식은 적을수록 좋다. 그것이 내가 명심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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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것이 약이다
===== PDF 63쪽 =====
나는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지 않아 잘 모르지만, 연인의 휴대전화 통화 기록을 확인했다가 외도를 발견하고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요즘에는 흔히 듣는다. 이는 인간이 가진 ‘호기심’ 탓이며, 모르던 것을 알고 싶어 하는 일은 인간이 타고난 본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는 즐거움’의 이면에는 ‘모르는 즐거움’도 있다. 무엇이든 알면 좋은 것이 아니라, 모르는 채로 두는 편이 좋은 일도 이 세상에는 많다.
휴대전화로 하는 이별 이야기만 해도 상대를 필요 이상으로 캐묻고 “알지 말았어야 했다”고 뒤늦게 후회하는 사람이 제법 있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다소 더럽혀져 있다. 갓 태어난 아기는 순진무구하여 더러움을 모르지만 말을 익히고 세상과의 접점이 늘어날수록 사람은 마음을 더럽혀 간다. 그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람에게는 앞과 뒤가 있다. 그 양쪽을 억지로 모두 알려 하면 모가 난다. 지금 눈앞에 있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느끼면 된다. 진실은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 PDF 64쪽 =====
남자는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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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기분이 가라앉으면 얼굴이 아래를 향한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시선을 조금 들어 멀리 바라보는 편이 좋다.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시야가 좁아져 한 가지밖에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면 기분을 전환할 수도 없고 우울해진 원인에 점점 더 빠져들 뿐이다.
최근 우울 증세를 겪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거리를 둘러보아도 등을 둥글게 말고 고개를 숙인 채 걷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병의 어둠은 깊다.
“회사의 경기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사원 모두가 어두워진다면 그 회사의 실적은 더욱 떨어질 것이다. 답답함과 음침함을 깨뜨리는 데에는 무엇보다도 ‘밝음’이 필요하다. 어두운 상태에 있기 때문에 그곳에서 밝은 조짐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밝은 조짐은 밝은 곳에서 생겨난다.
나는 여름이면 이즈의 바다에서 잠수하기를 즐긴다. 물속에 잠겼을 때에도 해저만 보고 있으면 시야가 좁아져 바다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변화를 알아차릴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나는 잠수 중에도 시선을 조금 들어 멀고 가까운 곳의 기척을 동시에 부드럽게 느끼려 한다.
가라앉았을 때야말로 시선을 조금 들어 조금이라도 빨리 밝음을 되찾아라. 그것이 철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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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하게 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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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을 타고 있으면 문이 닫히는 틈에 뛰어드는 사람을 자주 본다. 틀림없이 시간에 쫓겨 움직이고 있거나 신속하고 정확한 일을 좀처럼 해내지 못해 늦어져서는 안 될 볼일이라도 있는 것이리라. 그러나 늘 도장생들에게 말하듯 평소부터 ‘준비·실행·마무리’를 제대로 해두면 여유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나는 무슨 일이든 여유 있게 해낸 적은 없지만, 일상의 잡다한 일도 급하게 끝내야 하는 급한 용무도 여러 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법이다.
다급한 일이라 해도 재촉받는 기분으로 움직이면 실수를 하거나 어중간한 결과로 끝나기도 한다. 그것이 설령 급한 일이라 해도 거기에 ‘놀이’의 요소를 더하면 마음에 여유가 생겨 빠르면서도 실수 없이 처리할 수 있다.
얼마 전 어느 출판사에서 “사쿠라이 씨의 책을 서점에 진열하는 데 사인본 백 권이 필요하니 부탁드립니다”라는 급한 의뢰가 왔다. 그래서 나는 도장생에게 시간을 재게 하고 사인을 얼마나 빠르고 깔끔하게 쓸 수 있는지를 게임처럼 즐겼다. 일상적인 작업은 아무리 해도 지루하지만 그런 식으로 놀이의 양념을 조금 더하기만 하면 ‘느긋함’과 ‘정확함’을 실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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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고마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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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 문제는 늘 따라다닌다. 젊었을 때의 나는 그런 돌발적인 사건을 만나는 일을 즐기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을 둘러보면 대부분의 사람에게 문제는 가능하면 피하고 지나가고 싶은 것인 듯하다.
내가 집 밖으로 한 걸음 나서면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고 설레며, 뜻밖의 일과 마주치면 “오, 왔구나”라며 재미있어한다. 그래서 대리 승부사 시절에 야쿠자에게 일본도를 들이대거나 눈앞에 권총을 겨누어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내게 문제는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며, 비유하자면 하루 세끼 식사 같은 것이다.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각오가 없으면 그 뒤의 대응도 제멋대로 흔들린다.
문제와 사고를 부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꺼리거나 멀리하기만 해서는 남자는 성장하지 못한다. 문제를 ‘자기를 성장시켜 주는 것’으로 받아들여 늘 대비한다면 문제는 자신의 인생에 도움을 주는 존재가 된다.
문제를 맞닥뜨려 해결했을 때 그 사람은 이전의 자신보다 한층 크게 성장해 있다. 문제는 성가신 존재가 아니라 고마운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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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을 다스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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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는 흔히 세 가지 욕망, 곧 식욕·수면욕·성욕이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현대인은 금전욕, 물욕, 권력욕처럼 ‘삶’과 직접 관계없는 욕망도 아주 많이 품고 있다.
욕망은 인간을 미치게 한다.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규칙과 법이라는 것으로 가능한 한 욕망을 억누르려 해 왔다.
나는 욕망을 억제하더라도 ‘금욕’이라는 방식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욕망을 금한다’는 의식이 지나치게 강하면, 억지로 가한 압력 때문에 욕망이 엉뚱한 출구를 찾아 이상한 모습으로 터져 나올 수 있다. 금욕의 정도가 지나치면 자기 자신을 죽이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
승부사였던 나는 무척 절제된 삶을 살아온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큰 승부를 앞두면 한동안 ‘마시지 않고, 먹지 않고, 자지 않는’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남이 시켜서가 아니라 몸이 저절로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내 안에 있는 것은 ‘욕망을 금한다’는 감각이 아니라 ‘욕망을 다스린다’는 감각이다. 스스로를 다스리는 감각이 있으면 균형감각이 작동해 욕망을 적절한 선에서 억제할 수 있고, 유혹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유혹에 지기 쉬운 사람이라면 욕망을 금하려 하지 말고, 우선 스스로 다스리는 데서 시작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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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끔한 얼굴을 한 것을 경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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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때부터 세상에서 당연하고 올바르다고 여기는 것, 상식이나 규칙 같은 것을 ‘믿을 수 없는 것’이라 의심하며 살아왔다. 모두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일수록 그 뒤에는 속셈이 숨어 있곤 한다. 초등학생이라면 ‘선생님은 절대적인 존재’라고 여겼겠지만, 나는 그런 선생들에게도 “사실은 겁쟁이잖아요”, “강한 척할 뿐이지 정말은 약하잖아요”라는 의심의 눈길을 늘 보냈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그런 교사들의 본성을 드러내는 일을 재미로 삼았다.
그러니 도장에 오는 사람에게도 “말끔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일수록 경계해야 한다”고 늘 말한다. 싱글싱글 웃으며 다가오는 사람, 얼핏 보아도 그럴듯한 제도, 그런 ‘말끔한 얼굴’로 보이는 것일수록 그 이면이 더러우므로 조심해야 한다.
‘말끔한 얼굴’에 속지 않으려면 정확한 자기 판단력을 길러야 한다. 이 세상이기에 더욱 평소부터 넘쳐 흐르는 정보를 의심하고, 그 뒤에 무엇이 감추어져 있는지 꿰뚫어 보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사물은 위아래와 좌우, 여러 방향에서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감각으로 바라보다 보면 본질이 서서히 드러난다. 한 면으로만 사물을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은 언제까지나 ‘말끔한 얼굴’에 속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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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믿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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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승부를 앞둔 운동선수가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이제는 저 자신을 믿을 뿐입니다”라고 말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자신을 믿는다’는 말은 ‘자신감이 있다’는 말과 같다. 그러나 정말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감이 있습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결국 운동선수들이 말하는 ‘자신을 믿는다’에는 자신감이 없기에 더욱 ‘자신을 믿고 싶다’는 절박한 마음이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 자신은 지금까지 승부하는 동안 ‘자신을 믿는다’는 생각을 품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큰 승부를 앞두고는 늘 ‘나는 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나, ‘혹시 질지도 모른다’는 생각 사이에서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처럼 시소 같은 정신의 균형을 지켜 준 것은 내 안의 ‘납득감’이었다.
‘나는 준비를 철저히 했다’는 납득감, ‘혹독한 싸움을 온몸으로 해냈다’는 납득감, ‘누구보다 마작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는 납득감이다.
그런 납득감이 뿌리에 있으면 ‘치는 일’에 얽매이지 않는다. 승패를 넘어 오직 자신이 납득할 만한 싸움을 하면 된다. 나는 그렇게 수많은 큰 승부를 치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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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을 기대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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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는 우연이라 생각할 만한 일이 날마다 여기저기서 일어난다. 그러나 그 우연 하나하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은 일들이 차곡차곡 쌓인 끝에 그 우연이 일어났음을 깨닫게 된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우연처럼 보여도, 그 이면에서는 필연의 흐름이 여러 겹으로 이어져 있는 것이다.
가령 등산하다가 바로 눈앞에서 낙석이 일어나 간발의 차로 살아났다고 하자. 낙석이 일어난 원인은 지반의 느슨함 따위일 것이고, 그 사람이 마침 그 시각에 그곳을 지나간 데에도 나름의 일정이 있었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대지진이라 해도 지각 변동이 누적되어 그곳에 쌓인 힘이 한계를 넘었기에 단숨에 분출되는 필연적인 사건이지, 결코 우연은 아니다.
운이 없는 사람은 운을 기대하지만, 그것은 운을 ‘우연한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운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고, 운 또한 필연이다.
운이 와야 한다며 행동해 온 사람에게만 운이 온다. “운아, 와라” 하고 바라기만 하면서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평생 운과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우연이라는 것에 기대하는 한, 그 밑바닥을 흐르는 필연성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남자라면 우연 같은 것에 기대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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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은 상대를 거부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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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좋고 싫음이 있다. 나도 음식에는 호불호가 있고, 계절의 맛을 아는 미각 가운데서도 굴과 신맛이 강한 과일은 예전부터 아무래도 잘 먹지 못한다.
하지만 인간관계에 관해서만큼은 좋고 싫음으로 상대를 거부한 적이 없다. 궁합이 맞는다, 맞지 않는다는 감각은 있어도 “좋아한다, 싫어한다”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 “이 사람이 싫으니 사귀고 싶지 않다”고 상대를 전부 부정해 버리면, 왜 그 사람이 어려운지, 그 사람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끝나 버린다. 어떤 상대든 일단 받아들이는 데서 여러 가지를 배우고, 사람으로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면 오히려 ‘이 사람과는 맞지 않는다’고 느낀 사람일수록 적극적으로 교류해 온 듯하다.
맞는 사람도, 맞지 않는 사람도 우선 자기 안으로 받아들이고 자기 몸을 통과시킨다. 나는 이런 감각을 ‘스루하는 감각’이라고 부르지만,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대를 자기 안에 머물게 하지도 않고, 맞지 않으니 거부하지도 않는다. 어느 쪽이든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있으면 된다.
상대를 받아들이기만 해도 안 되고, 부정하기만 해도 안 된다. 사람을 ‘스루하는 감각’으로 맛볼 때 부드러운 강인함이 자기 안에 자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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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을 단순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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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이든 스포츠든 세상에는 여러 승부의 장이 있지만, 지지 않기 위한 비결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빠르고 강하게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다.
‘더 빠르게, 더 강하게’를 실천하는 데는 무엇보다 ‘단순함’이 빠져서는 안 된다. 말 하나를 고르더라도 길게 떠드는 것보다 필요한 말만 간결하게 전하는 편이 진의가 상대에게 닿기 쉽다. 격투기 같은 몸으로 겨루는 스포츠에서도 ‘단순함’은 아주 중요하다. 쓸데없는 생각이 끼어들면 불필요한 움직임이 생겨 빈틈이 생긴다. 불필요한 움직임은 속도까지 빼앗으므로 그런 식으로 싸우면 상대에게 유리해질 뿐이다.
이처럼 승부의 장에서는 무엇보다 ‘단순함’이 중요하지만, 무엇이든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멋이라고 착각하는 현대인은 생각도 동작도 복잡해지고 있다. 그러니 승부에서 이길 수 없고, 눈앞의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다.
생각에 의존한 싸움법은 손끝의 기교에 빠지기 쉬우며, 그것으로는 상대에게 강한 타격을 줄 수 없다. 반대로 단순한 싸움법은 움직임에도 이치가 맞고 군더더기 없이 아름답다. 남자가 지녀야 할 것은 얕은 기교가 아니라 단순하고 아름다운 생각과 동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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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를 보여 주고 승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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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의 세계에서 ‘패를 드러내지 않는 것’은 유효한 전략 가운데 하나로 여겨진다. 치밀하게 준비하면 상대보다 앞설 수도 있고, 숨겨 둔 무기나 전략으로 허를 찌를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젊을 때부터 추구해 온 것은 ‘맨몸의 강함’이었다. 막 목욕을 마치고 알몸으로 있는 사람이 참으로 강한 사람이며, 그런 사람은 정신까지 맨몸이므로 패를 드러내도 강하다.
‘패를 감춘다’는 것은 마음의 차원에서 보면 자신의 약점이나 불리함을 의식한다는 뜻이다.
승부에 임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보기에는 이미 승부하기도 전에 상대에게 지고 있는 듯한 사람도 있다. 또 상대를 속이려는 속셈이 결국 자기 자신마저 속이는 꼴이 되어, 설령 한때는 이겼다 해도 그런 가짜 강함은 오래가지 못한다.
패를 다 드러내고도 상대와 승부할 수 있는 강함. 그것이 남자가 추구해야 할 강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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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을 찾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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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교과서가 가르치는 것은 하나의 명확한 ‘정답’이다. 문제가 있고 거기에는 반드시 답이 존재한다. 그것이 우리가 학교에서 배워 온 기본 개념이다.
그러나 그것을 인생에 대입하면 문제 뒤에 반드시 답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인생에는 답 없는 문제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런데도 학교 교육에 물든 현대인은 어떤 문제든 답을 찾으려 한다.
인간은 본래 답이 없는 세계에서 살아간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우주는 왜 존재하는가? 그런 질문에 명확한 답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도 지금 사람은 무엇이든 곧장 답을 찾으려 한다. 그래서 답을 찾지 못하면 극도로 불안해진다. 그 불안을 누르려고 지식이라는 것을 밀어 넣어 잠시 안도하려 하지만, 인생에는 답 없는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으므로 다시 불안해진다. 현대인은 그런 일을 지치지도 않고 되풀이한다.
이 책의 주제인 ‘남자의 강함’도 한마디로 명확히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답이 없으므로 말로 나타낼 수 없고, 강함을 구해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답’이 없다는 사실을 ‘강함’으로 몸소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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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좋은 타이밍’을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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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 같은 승부에서 강한 사람은 누구나 ‘좋은 타이밍’을 지니고 있다. 상대와 좋은 타이밍을 유지하므로 자기 방식대로 싸울 수 있다. 또한 그런 승부에서 좋은 타이밍을 잡는 사람은 일상에서도 시간을 잘 조절한다.
‘시간’은 그저 흘러가기만 하는 것이며, 그 끝에는 ‘지금’이 있다. 이 ‘지금’은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이 아니므로, ‘지금’을 알아차린 순간에는 벌써 과거가 되어 있다. 그러니 ‘지금’에 늦지 않는 감각이 매우 중요하다.
‘시간’과 좋은 타이밍을 맞추려면 무엇을 하든 ‘시간에 늦지 않는다’는 점을 의식하면 된다.
일에서도 사생활에서도 “약속 시간에 늦지 말아야지”라고 의식한다. 그런 마음가짐의 축적이 ‘시간과 맞는 일’로 이어져 마침내 ‘좋은 타이밍’이 나타난다.
일상에서 시간과의 타이밍을 잘 잡는 사람은 일이나 스포츠의 승부에서도 ‘좋은 타이밍’을 잡는다. 승부에서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늦지 않기 위해 시간과 좋은 타이밍을 맞추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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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를 즐길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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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에서 패하는 원인의 99퍼센트는 자멸이다. 하나의 실수를 계기로 실수의 연쇄를 멈추지 못한 채 스스로 패자가 되어 간다.
프로야구에서도 그런 자멸 장면을 흔히 본다. 그때까지 호투하던 투수가 한 타자에게 포볼을 내주고 크게 무너지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승부 도중 자멸하는 것은 자신이 저지른 단 한 번의 실수에 끌려가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수한 뒤 곧바로 마음을 전환하지 못하므로 실수가 꼬리를 물고 자멸한다. 그렇다면 실수를 저지른 뒤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실수 뒤에 즉시 마음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실수는 당연히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한다. 그러니 그 실수를 뉘우치거나 탓하기보다, 실수 때문에 생긴 상처가 더 벌어지지 않게 한다. 그리고 “실수해도 괜찮아”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면 하나의 실수에 얽매이는 일도 사라진다.
실수했을 때 ‘큰일 났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이런, 내가 실수했네” 하며 그 실수마저 즐길 수 있다면 남자로서도 한 단계 성장한 것이다. 필사적으로 싸우는 동안 실수를 했을 때 “나도 아직 멀었군” 하고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좋은 결과가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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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을 감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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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나는 다른 아이들이 하지 않을 법한 위험한 놀이만 골라 했다. 한 걸음 잘못 내디디면 크게 다치는 정도가 아니라,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놀이였다.
그러나 나는 그런 위험한 놀이를 통해 ‘이치에 맞는 자연스러운 몸놀림’을 배웠고, 그것은 이후의 인생에서도 크게 도움이 되었다.
나는 그렇게 아이 때부터 위험을 감수하며 살아왔지만, 경제 불황이 길어지는 오늘날 사회에서 위험을 감수하며 사는 것은 좀처럼 어려운 듯하다.
하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영역으로만 도망치면 남자는 성장하지 못한다. 위험을 감수하는 감각이 없으면 자기 안의 잠재력도 끌어낼 수 없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실패할 가능성이 더 큰 영역에서 저지른 실패야말로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안전지대 안에서 아무리 실패해도 그것은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젊어서 한 고생은 사서라도 하라”는 말도 있지만, 젊은 시절의 실패도 사서라도 해 보는 편이 좋다. 그 정도의 각오가 없으면 남자로서의 성장도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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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감을 몸으로 익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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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을 앞두고 극도로 긴장한 사람에게 “긴장 풀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런 말로 긴장이 풀릴 정도라면 애초에 그리 긴장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긴장은 생각과 몸이 굳어 초래되는 것이니, 말 한마디로 풀려 해도 무리다.
긴장한 사람을 보게 되면 나는 “야, 그렇게 굳지 말라고” 말하며 굳어 있는 몸의 부위를 직접 만져 풀어 준다. 그렇게 몸의 긴장을 풀면 생각도 부드러워진다.
애초에 쉽게 긴장하는 사람은 평소부터 긴장감에 접하지 않기 때문에 긴장해 버린다. 많은 사람 앞에서 연설할 때 곧바로 긴장하는 사람은 사람들 앞에서 말해 본 횟수가 적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평소부터 가능한 한 많은 사람 앞에서 말하는 일을 반복하면 그 긴장은 확실히 옅어진다.
긴장감은 작은 궁리로 길러 갈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하루에 열한 개밖에 못 만드는 일을 ‘열두 개 만들겠다’고 정한다. 그렇게 자신을 몰아붙이는 데서 긴박감이 생기고, 그 감각에도 익숙해질 수 있다. 열한 개를 만들었다면 다음에는 열두 개에 도전한다.
남자로서 인간의 폭은 그렇게 긴장감의 횟수를 쌓는 가운데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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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함과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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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평등이라는 개념이 이 사회에 나타난 뒤로, 이전까지 존재하던 ‘남자의 영역’과 ‘여자의 영역’의 경계가 흐려지고 각자가 지녔던 의미에서의 ‘다움’도 사라진 듯하다.
나는 지금까지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사는 것이 좋다”고 계속 말해 왔다. 지금 사회에서는 “여자답게”라고 하면 ‘차별’이라는 말을 들을지도 모르지만, 남녀평등을 전제로 하더라도 저마다 잃어서는 안 될 영역이 있다고 생각한다.
‘남자답게’ 같은 말을 하면 곧바로 떠올리는 것이 우락부락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남성상이다. 그러나 진정한 남자다움은 그런 겉모습만의 문제가 아니다.
20여 년 전 내가 시모키타자와에서 작귀회를 시작했을 때, 도장에 오는 사람들에게 “솔직함과 용기를 가지고 마작을 쳐라”고 가르쳤다. 인간으로서, 남자로서 자신의 삶을 생각할 때 가장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솔직함과 용기’이며, 그것이야말로 내가 생각하는 ‘남자다움’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잘못이나 결점을 숨기지 말고 ‘솔직하게’ 드러낸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의 삶은 바로잡히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어려움이 있어도 달아나지 않고 ‘용기’를 갖고 맞서면 인생의 벽을 넘어설 수 있다. 그것을 되풀이해 자신을 두 번째, 세 번째 단계로 끌어올릴 수 있는 강함을 갖는 것. 그것이 내가 말하는 ‘남자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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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가지지 않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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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특기를 이어받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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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에 강한 남자가 되는 가장 빠른 길은 ‘승부에 강한 남자’와 겨루는 것이다. “그런 말은 말장난 같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승부 세계의 진리다.
내가 한때 대타로 몸담았던 뒷골목 마작의 세계에는 아무튼 강한 상대와 싸우고 싶어 하는 혈기왕성한 자들이 곳곳의 마작장에 있었다.
그 부근의 마작장에는 ‘조금 강한’ 정도의 사람과 마작해도 재미가 없다며 그런 상대를 찾지 않는 맹자들이 꿈틀거렸다. 나 또한 그런 강자들을 쓰러뜨리고 싶다는 욕망과 함께 ‘최고의 상태에 있는 상대와 싸우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다.
그래서 일부러 상대가 특기를 펼칠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 주는 일도 여러 번 있었다. 약한 상대를 쓰러뜨리기는 쉽지만, 기세가 오른 강자를 꺾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런 어려운 상황을 이겨 내야 진정한 강함이 몸에 밴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일부러 상대가 특기를 발휘하게 하는 일을 반복했다.
승부에서 ‘나만 살아남겠다’는 사람으로서는 향상을 기대할 수 없다. 인생을 살아가며 승부를 할 때는 ‘나만 살면 된다’가 아니라 ‘나도 상대도 살린다’는 기본적인 사고방식을 지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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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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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는 처지와 쫓기는 처지에서는 마음으로 보아도 쫓는 쪽이 유리하다고 한다. 선두를 달리는 사람은 아무래도 뒤가 신경 쓰인다. 선두 자리를 지키려 하면 계속 공격적으로 나아가면 되는데도, 마음이 ‘수비’ 쪽으로 기울고 만다.
나는 승부의 장에서 ‘공격’은 있어도 ‘수비’라는 입장에 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키려 하면 어떻게든 ‘도망치는’ 자세가 된다. 인간은 말에 얽매이는 존재이므로 ‘지킨다’는 의식을 가지면 약한 부분을 지키려 하고, 감추려 한다. 그 결과 공격적인 ‘쫓는 입장’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그렇다면 어떤 의식을 가져야 도망치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것은 ‘지킨다’가 아니라 ‘받아들인다’는 의식이다.
무도에서는 상대의 공격을 ‘막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라 한다. 상대의 공격을 받아 멈추고, 거기서 공격으로 전환한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상대가 공격하는 힘을 깎아 내고, 다음에 자신이 공격하기 쉽게 만들기 위한 ‘공격’이라고 해도 좋다. 공격하는 마음으로 상대의 공격을 받아들이는 한, 거기에 ‘수비’라는 의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쫓기는 처지에 놓였을 때도 “어디서든 덤벼 봐” 하고 받아들일 마음이 있으면 도망치는 자세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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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의 자세를 바로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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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격투기 전문가도 아니지만, 도장을 찾아온 프로레슬러나 격투가에게 “몸을 움직이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라는 부탁을 자주 받는다.
몸의 자세에는 좋은 자세도 있고 나쁜 자세도 있다. 등을 꼿꼿이 폈다고 무조건 좋은 자세인 것은 아니다. 모양이 볼품없어도 중심축이 확실히 서 있다면 좋은 자세다. 다만 자세를 바로잡을 때 겉으로 보이는 모양만 추구해서는 좋은 자세가 되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과 몸은 하나이므로 몸의 자세를 바로잡고 싶다면 마음의 자세도 바로잡아야 한다.
제대로 된 자세란 힘이 들어가지 않은 자세다. 생각과 몸에서 힘을 빼고, 부드러우며 어느 곳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은 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는 ‘생각하는 것’을 좋은 일로 여기는 경향이 있어 생각에서 좀처럼 힘이 빠지지 않는다. 생각이 긴장해 굳어지면 마음도 굳고, 몸에서 아무리 힘을 빼려 해도 깊숙한 곳에는 경직이 남는다. 그래서는 좋은 자세를 만들 수 없다.
마음을 부드럽게 하는 한 가지 방법은 어른들의 사회에 물들지 않고 ‘동심’을 간직하는 것이다. 자신의 출발점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굳은 마음은 상당히 누그러진다. 지금 지위나 명예를 지녔다 해도 그것에 기대지 말고, 마음 한구석에 동심을 남겨 두는 것이 좋다.
===== PDF 103쪽 =====
편한 길을 택하지 마라
===== PDF 104쪽 =====
문명의 발달은 훌륭한 것이라고 많은 사람이 생각하지만, 나는 반드시 그렇다고 보지 않는다. “문명이 발전하지 않았다면 인간은 더욱 인간답게 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문명은 인간의 ‘편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에서 발전해 왔다. ‘편하고 싶다’는 마음이 편리한 것을 낳았고, 근대에는 거기에 ‘효율성’까지 더해져 온갖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기술은 발전했어도 우리 인간을 돌아보면 과거보다 심하게 퇴화한 듯하다. 편리한 것에 지나치게 의존해 인간이 생물로서 지녔던 생명력이 크게 깎여 나갔다.
그래서 나는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 대부분이 추구하는 ‘편안함’을 얻으면 안 된다고 느낀다. “편하게 이익을 보자”, “편하게 돈을 벌자”는 식으로 ‘편안함’을 추구하는 가치관이 사회 전체에 만연한 듯하다.
편안함만 좇으면 당연히 힘든 상황을 견디고 넘어설 힘이 길러지지 않는다. 인간으로서 퇴화하는 것이 싫어 나는 눈앞에 편한 길과 험한 길이 놓이면 늘 망설이지 않고 험한 길을 택해 왔다. 편한 길만 골라 왔다면 험한 일을 극복한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권리는 얻지 못한다.
===== PDF 105쪽 =====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소중히 하라
===== PDF 106쪽 =====
마작은 엎어 놓고 쌓은 패, 상대가 가진 패, 승부의 흐름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얼마나 느끼느냐가 승부의 핵심이다. 하지만 마작을 하는 사람 대부분은 눈에 보이는 자기 패나 상대가 버린 패에만 신경을 쓴다. 사람은 눈앞의 것에만 사로잡히면 마음과 몸이 굳어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한다. 그런 상태로 승부에서 이기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마작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느낄 때는 귀를 맑게 해 주변의 소리를 들으려 한다. 이는 상대와 전체 흐름을 눈으로 좇지 않고 귀로 느끼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가 패를 가져오고 버리는 소리 속에서 미묘한 변화를 느껴 “초조해졌군”, “망설이고 있군”, “승부를 걸었군” 같은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바닥에 버려진 패나 상대의 표정을 눈으로 읽으려 할 때보다 귀로 느낄 때 상황을 훨씬 또렷하게 이해하는 경우가 있다.
귀를 맑게 하는 힘은 내게만 주어진 특별한 능력이 아니다. 대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힘을 제대로 지니고 있다.
현대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인공적인 것에 둘러싸인 나머지 원래 지니고 있던 감성과 능력을 닫아 버렸을 뿐이다.
===== PDF 107쪽 =====
이기면서도 양보할 여유를 가져라
===== PDF 108쪽 =====
여유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맞붙으면 어느 쪽이 이길 확률이 높을까. 말할 필요도 없이 여유가 있는 쪽이다.
여유가 있는 사람은 생각과 행동에도 폭이 생긴다. 어떤 사태에도 대처할 수 있고 자기뿐 아니라 상대까지 생각할 수 있다.
반대로 여유가 없는 사람은 자기 생각밖에 하지 못한다. 스스로 궁지에 몰린 상태가 되고, 아직 지지도 않았는데 “아, 나는 이제 졌다”고 초조해한다. 자기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 상대의 실패만 바란다. 그런 상태로 승부에서 이길 리 없다.
내가 말하는 ‘여유’란 궁지에 몰려도 태연자약하게 움직일 수 있는 상태다. 물론 그뿐만 아니라 ‘이기면서도 상대에게 양보할 수 있는 마음’까지 포함한다.
나는 언제나 상대를 위해 마작을 쳐 왔다. 승부사는 상대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결코 강해질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마작을 치는 동안에도 늘 “자, 올라가십시오”라는 마음으로 임했다.
다른 승부나 일에서도 “부디 이겨 가십시오”, “성공하십시오”라고 상대를 생각하면 어느새 흐름이 자신의 흐름으로 바뀐다. 승부란 그런 것이다.
===== PDF 109쪽 =====
아무것도 가지지 마라
===== PDF 110쪽 =====
나는 숙박 여행을 갈 때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 간다. 그래서 동행한 사람이 “회장님 짐은 그것뿐입니까?”라며 자주 놀란다. 함께 가는 사람 중에는 가방을 두세 개씩 가져오는 사람도 있다.
여행 짐이 많아지는 사람은 “이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저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러다 결국 여행지에서 쓰지도 않을 물건으로 가방을 채운다.
현대인은 물건뿐 아니라 지식과 정보처럼 지니지 않아도 될 것까지 끌어안고 살아간다. 현대인에게는 온갖 ‘욕심’이 있기에 무언가를 가지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것이다. 그 결과 많은 사람이 자유를 잃고 숨이 막힐 듯 답답한 삶을 산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누구도 모른다.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도 마찬가지다. 갑작스러운 일에 대응하려면 가능한 한 몸을 가볍게 하는 편이 좋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떠날 때 최소한의 것만 챙긴다. 일상에서도 불필요한 지식과 정보는 가능한 한 버린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잃지 않으려고 움켜쥐는 힘이 세지고, 애쓰는 만큼 마음과 몸의 움직임은 둔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 PDF 111쪽 =====
‘채우지 않는 것’이 마음을 채운다
===== PDF 112쪽 =====
작귀회 도장생 중에는 돈이 없는 젊은이가 많다. 그런데도 그들은 “저것이 부족하다”, “이것이 부족하다”고 세상 사람들처럼 부족함을 필사적으로 메우려 하지 않는다.
작귀회의 마작과 거리의 일반적인 마작이 결정적으로 다른 점도 여기에 있다. 욕심에 사로잡히지 않는 마작이 작귀회의 마작이기에 도장생들은 ‘승리’나 ‘돈’에 대한 집착이 옅다.
자기 욕심을 채우는 데 혈안이 된 세상 사람들에게 그들은 우리 도장생들보다 훨씬 ‘충족되지 않은’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오히려 평범한 사람보다 훨씬 ‘충족된’ 사람이다.
욕심에 사로잡혀 얻는 데만 정신이 팔린 사람은 만성적으로 “채워지지 않았다”는 기분으로 살기에, 이미 ‘채워진’ 부분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가령 열 가운데 여섯은 채워졌지만 네가 부족한 상태라고 해 보자. 욕심에 사로잡힌 사람은 열을 모두 채우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하므로 부족한 네 개만을 좇는다.
그러나 평소부터 “지금 있는 만큼이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미 가진 여섯을 무척 소중히 여긴다. 여섯의 가치를 알아차리고 그것을 최대한 살릴 수 있다면 삶의 풍요는 열을 넘어설 것이다. 여섯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는 사람은 사실 열을 가져도 채워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 PDF 113쪽 =====
참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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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돌아보면 ‘참았다’는 기억이 거의 없다. 전쟁이 끝난 뒤 아무것도 없던 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내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구하기조차 어려웠지만, ‘참았다’는 기억은 없다. 일본 전체가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으니 그것이 당연했고, 참을 만한 대상조차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른이 된 뒤에도 무언가를 참았다는 기억은 거의 없으며,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해 왔다. 작귀회에서 젊은이들과 어울리는 지금도 그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나는 이처럼 ‘참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왔지만, 세상에서는 참는 것을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처럼 가르치기도 한다. 장남이나 장녀라면 부모에게 “형이니까 참아라”, “언니니까 참아라”라는 말을 한두 번쯤은 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타인을 위해 참는 일이 어느 정도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에서 말하듯 “참으면 뒤에 좋은 일이 있다”는 가르침이 정신을 기르는 데 그리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나친 인내가 주는 정신적 손상은 결코 작지 않다. 반드시 보상을 받는다는 보장도 없다. 그렇다면 ‘보상받는다’는 환상을 버리고, 굳이 참지 않고 살아가는 편이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는 길이다.
===== PDF 115쪽 =====
의미를 찾지 마라
===== PDF 116쪽 =====
인류가 언어를 얻은 뒤로 문호, 예술가, 철학자를 비롯한 많은 지식인이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며 살아가는 의미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지구에서 살아가는 일에 의미를 찾는 존재는 인간뿐이다. 자연의 생물들은 자기 행동의 의미를 찾거나 생각하지 않는다. 본능 그대로 무언가를 느끼고 움직일 뿐이다.
그런데 머리로 생각하는 인간은 동물이나 물고기처럼 살아갈 수 없다. 늘 손익을 계산하며 행동하고, 거기에서 합리적인 의미를 찾는다.
갓 태어난 아기는 ‘살아가는 의미’를 찾으며 우는 것일까.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울고 젖을 먹는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아기는 본능 그대로 울고 어머니의 젖을 먹을 뿐, 그곳에 살아가기 위한 의미 따위는 없다.
삶의 의미를 찾는 사고방식에 아름다운 뜻과 고상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 그런 인생관은 ‘의미’라는 것에 사로잡혀 사람을 병들게 한다. 삶에는 의미가 정해져 있지 않으며, 쓸데없는 일도 있어야 한다. 그것은 ‘의미를 찾는 것’으로는 결코 얻지 못하는 가능성을 인간에게 준다.
===== PDF 117쪽 =====
모르는 채로 두어라
===== PDF 118쪽 =====
혼란의 시대를 맞은 지금,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이 빛을 찾으려고 ‘정답’을 원한다.
서점을 둘러보면 오늘날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지침서가 넘쳐난다. 내게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라며 답을 구하는 이메일과 편지가 끊임없이 온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인생에는 의미가 없는 것처럼 답도 없다. 그렇기에 인생은 재미있다.
나도 줄곧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안다’는 것은 문제의 대상을 어떤 형태로 나누어 이해한 다음에야 가능하다. 하지만 인생은 본래 ‘나눌 수 없는’ 것이므로 ‘알 수 없는’ 것이다.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하고 복잡한 물리식이나 수학 공식을 사용해도 인생의 명확한 답은 찾아낼 수 없다.
자연계의 생물도, 지구도, 그 둘레에 펼쳐진 우주도 답 따위는 구하지 않는다. ‘모르는’ 상황에서 헤매는 것이 아니라 그 상태를 ‘재미있다’, ‘즐겁다’고 느낀다. ‘모르는 것’을 더 소중히 여긴다면 인생은 더욱 즐거워지지 않을까.
===== PDF 119쪽 =====
남의 일을 내 일로 받아들여라
===== PDF 120쪽 =====
세상에서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마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인간은 살아 있는 한 누군가나 무언가에 반드시 폐를 끼친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예외 없이 신세를 지며 살아간다. “나는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좋겠다. 사람은 살아가기 위해 자연의 혜택을 받고 사회로부터 무언가를 받는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누군가에게 신세를 진 셈이다.
사람은 반드시 폐를 끼친다. 그것을 알기에 나는 도장생에게 “폐 좀 끼쳐라”라고 가르친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 두세 배로 타인을 위해 살아가게 된다.
사람이 저지르는 많은 잘못은 타인을 자신과 관계없는 존재로 보는 데서 시작된다. 자신과 무관하다고 여기기에 잔인한 짓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다.
지진 재해가 일어난 뒤 피해 지역을 돕겠다며 많은 성금이 모였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 안으로 한정하지 않아도 세계에는 아직 ‘남의 일’을 ‘내 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많다. “사람은 반드시 무언가에 폐를 끼치고 있다.” 그 사실을 이해한다면 이 세상에 ‘남의 일’ 같은 것은 더 많이 사라질 것이다.
===== PDF 121쪽 =====
자유를 잘못 이해하지 마라
===== PDF 122쪽 =====
일이나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느끼며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지 않을 것이다. 인간관계, 체면, 상식, 규칙, 온갖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기를 꿈꾼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라. 마작이든 다른 게임이든 반드시 규칙이 있다. 규칙이 있기에 게임이 성립하고 즐길 수 있다.
인생을 하나의 게임으로 본다면 거기에도 무언가의 규칙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규칙의 속박에서 풀려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은 스스로 새로운 게임을 다시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 당연히 그곳에도 새로운 규칙이 필요해진다.
이 세상은 자유로운 듯 보이지만 사실은 지극히 부자유한 세계다. 인간은 오히려 그런 부자유를 지닌 생물이다. 그 사실을 제대로 이해한 뒤 자유를 생각하는 편이 좋다. 세계는 어디까지나 규칙 안에 있으며, 매우 미묘한 균형 위에 성립해 있다.
===== PDF 123쪽 =====
발바닥으로 흙을 느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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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손자와 집에서 놀다가 그 발을 무심코 바라보니 발가락으로 바닥을 꽉 움켜쥐듯 서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아, 이것이 ‘선다’는 것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탁자와 의자가 놓인 바닥 위에 서는 상태는 원리상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동물의 움직임에서 느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 맹금류처럼 발로 땅을 단단히 움켜쥐던 아이도 양말과 신발에 익숙해지면 ‘땅을 움켜쥐고 선다’는 감각을 잃어 간다.
바닥이 단단한 가죽 구두를 신고 아스팔트 도로나 콘크리트 바닥을 계속 걷는 어른들은 발을 딛는 모습이 탁자나 의자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해변 모래사장을 맨발로 걸으면 사각거리는 모래의 감촉이 더없이 편안하다. 아득한 옛날부터 인류가 지녔던 ‘대지를 움켜쥔다’는 감각이 되살아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간과 자연은 본래 하나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은 더욱 자연에 가까운 곳에서 발로 대지를 움켜쥐듯 살아가야 한다.
===== PDF 125쪽 =====
달아오르지 마라
===== PDF 126쪽 =====
사람의 감정은 그때그때 밀물과 썰물처럼 변화를 반복한다. 늘 감정이 일정한 사람은 이 세상에 한 명도 없다.
계절이 바뀌면서 온도 차가 생기듯 사람의 마음에도 온도 차가 생긴다. 하지만 사는 곳의 온도 차가 날마다 너무 심하면 그 환경은 사람에게 가혹해진다.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온도 차가 지나치게 심한 것은 조금 생각해 볼 문제다.
이른바 ‘열혈’형 인간은 자신이 하는 일에 몰두해 스스로에게 취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나는 예전부터 이런 열혈형 인간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뜨거워지기 쉽고 식기도 쉽다’는 말처럼 열혈형은 여기에 딱 들어맞기 때문이다.
‘열혈한’이라는 말을 들으면 모든 일에 온 힘을 다하고 언제나 목숨을 거는 사람 같은 인상을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자신이 몰두하던 일에서 멀어질 때 놀랄 만큼 차가워지곤 한다. 상대에게 차갑게 대할수록 좋아지는 사람은 별로 없을 테니, 열혈형과 어울릴 때는 조금 조심하는 편이 좋다.
정신의 균형을 유지하려면 마음의 뜨거움과 차가움 역시 알맞은 균형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PDF 127쪽 =====
함부로 사람을 존경하지 마라
===== PDF 128쪽 =====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면 “뭐야, 존경하는 사람도 없는 건가?”라며 낮게 보는 풍조가 있다. 하지만 나는 존경하는 사람이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은 무언가에 사로잡히면 움직임이 굳고, 심할 때에는 완전히 멈춘다. ‘존경한다’는 것은 그것만으로 이미 무언가에 사로잡힌 상태이며, 세뇌의 시작이기도 하다. 존경이 지나치면 “그 사람이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좋다”는 데까지 나아간다. 누군가를 존경하는 일이 두렵다는 말은 이런 의미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훌륭한 사람이라도 인간적인 결점은 반드시 있다. 존경이 지나치게 뜨거워지면 그런 부정적인 면이 보이지 않게 되고 오로지 미화하게 된다.
애초에 숭배로 기울어지는 심리는 인간의 나약함에서 생긴다. 자기 안의 나약함이 누군가에게 매달리고 구원받고 싶다는 소망이 되어 숭배하는 대상을 향한다. 하지만 누군가를 존경하고 숭배하는 일은 지나친 환상을 품는 것이며, 그것이 식으면 존경이 증오나 분노로 갑자기 바뀌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도장생들에게 늘 “나 같은 사람을 존경하지 마라”고 말한다. “좋아하는 정도의 감각으로 있어라.” 그쯤이 딱 좋다.
===== PDF 129쪽 =====
‘좋은 일’에만 사로잡히지 마라
===== PDF 130쪽 =====
중동에서는 지금도 종교 간의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 본래 사람들의 마음에 평온을 가져다주어야 할 종교가 오히려 사람들의 삶을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현실이다. 이것만 보아도 인간이 ‘좋다’고 믿는 것에 사로잡히면 결과적으로 ‘좋지 않은’ 일을 일으킬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좋은 일’을 하려고 다른 누군가에게 증오를 품게 된 사람도 세상에는 많다. 나는 그런 사람을 ‘좋은 일 병’에 걸렸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역사를 풀어 보아도 그곳에서 벌어진 수많은 비극은 대부분 ‘좋은 일 병’에서 태어났다. 전쟁 같은 것이야말로 ‘좋은 일 병’의 극단적인 모습일 것이다.
최근 내가 “좋은 일 병이군” 하고 느끼는 것은 생태주의와 관련한 움직임이다. ‘에코’라는 이름으로 온갖 활동이 벌어지지만, 어느 것이나 내 눈에는 몹시 거짓되어 보인다.
친환경 자동차가 등장하자 이를 지원한다며 정부가 친환경 자동차 감세까지 시행했지만, 진심으로 환경을 생각한다면 애초에 자동차를 타지 않는 편이 옳다. ‘좋은 일’에만 사로잡히면 오히려 나쁜 일을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언제나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한다.
===== PDF 131쪽 =====
신념에 사로잡히지 마라
===== PDF 132쪽 =====
‘신념을 관철한다’는 말도 있듯이 일본인은 한 가지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아름답게 여기는 정신성을 지니고 있다.
한눈팔지 않고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모습에서 어딘가 순수하고 숭고한 정신을 느끼기 때문일까. 그러나 나는 ‘신념을 관철하는 것’이 결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한 가지 일에 사로잡혀 버린 상태이기 때문이다.
‘신념’은 때로 사람을 고정관념 덩어리로 만들어 사물의 본질을 보지 못하게 한다. 종교의 가르침에 따라 테러를 저지르는 신자들은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자기 목숨조차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처럼 맹신으로 굳어진 강한 신념은 오히려 약하다. 망치로 두드리면 산산이 부서져 버린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의 사고에는 유연함이 있다. 고무공처럼 부드러워 충격을 받아도 무너지지 않는다.
신념에 지나치게 사로잡히면 “신념을 관철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신념을 관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라는 식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세상에는 아무리 애써도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
“신념을 굽히지 마라”라는 말도 자주 듣지만, 신념은 당당하게 굽혀도 된다. 도중에 포기하거나 단념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좋은 의미에서의 전환이며, 흐름에 맞춘 변화이기도 하다.
===== PDF 133쪽 =====
엄격함을 통과한 다정함을 가져라
===== PDF 134쪽 =====
대타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나는 늘 나 자신을 엄격함에 내맡겨 왔다. 그 시절의 혹독한 생활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흔히 하는 말이지만, ‘남에게는 다정하고 자신에게는 엄격하라’는 말을 인간의 올바른 삶의 방식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나는 “자신에게 엄격하지 않으면 남에게 다정할 수 없다”라는 생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요즘에는 “자신에게 다정하지 않으면 남에게도 다정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 역시 예전에는 ‘나라는 존재를 엄격함 속에 놓아두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나는 나 자신에게 다정하기 때문에 남에게도 다정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고 깨달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사쿠라이 씨는 다정하시네요” 같은 말을 하면 역겨운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여성이 바라는 듯한 겉치레뿐인 다정함은 내게 아무래도 좋은 다정함이다. 그런 다정함은 내가 추구하는 다정함이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나의 다정함은 엄격함에서 출발한 ‘다정함’이다. 진정한 다정함은 엄격함을 거쳐야 비로소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그저 다정하기만 한 다정함은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한다.
===== PDF 135쪽 =====
아래를 보며 살아라
===== PDF 136쪽 =====
어려운 시대를 마주한 지금, “왜 나만 이런 일을 겪어야 하지……”라고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왜 나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의식하지 못하는 ‘자기’가 강한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만 싫은 일이나 불리한 일이 생겨도 피해의식을 품게 된다.
나는 괴롭고 힘든 일이 있어도 “저 사람이 아니라 나라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렇게 생각함으로써 나라는 ‘자기’와 주변 사람이라는 ‘타인’, 즉 ‘자기’와 ‘타인’ 사이의 균형을 잡아왔던 것 같다. 괴로움, 고통, 외로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결국 자기 스스로 키우고 있을 뿐이다.
내가 아직 어렸을 때 어머니는 “위를 보며 살지 마라. 아래를 보며 살아라”라고 가르치셨다. 어머니는 분명 “세상에는 너보다 훨씬 더 힘든 사람도 있단다”라는 뜻을 전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나는 그런 어머니의 말씀을 통해 어느새 자신을 스스로 구하는 사고방식과 요령을 배웠다. 위만 바라보는 삶은 스스로 자신을 괴롭힐 뿐이다. 아래를 보며 ‘자기’와 ‘타인’을 늘 의식하라. 그것이 스스로를 구하는 요령이다.
===== PDF 137쪽 =====
잘못된 경쟁을 하지 마라
===== PDF 138쪽 =====
현대사회에서 벌어지는 경쟁은 ‘지나친 경쟁’이며, 나는 그것을 ‘잘못된 경쟁’이라고 생각한다.
세계를 둘러보아도 국가 간의 다툼, 경제적 다툼, 종교적 다툼 등 ‘지나친 경쟁’을 들자면 끝이 없다. 이런 일을 계속한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인류는 파멸할 것이다.
작귀회에 모여드는 젊은이들은 모두 그런 ‘잘못된 경쟁’ 속에서 살아왔다. 그래서 마작을 치는 방식부터 승부에 임하는 마음가짐과 노력하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잘못되어 있었다. 나는 작귀류 마작을 통해 그들의 잘못을 하나씩 바로잡아 왔다.
작귀류가 지향하는 것은 적도 내 편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경쟁, 손익 계산을 떠난 승부, 즉 균형 잡힌 ‘적당한 경쟁’이다.
“그런 경쟁이 어디 있느냐”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며, 나는 모든 사람에게 내가 말하는 ‘적당한 경쟁’을 이해시키려는 생각은 없다. 다만 작귀회에 모인 젊은이들에게는 “이런 경쟁도 있다”라는 것을 몸소 가르쳐 주고 싶다.
균형 잡힌 ‘적당한 경쟁’ 속에서야말로 사람은 서로 갈고닦고 도우며 강해질 수 있다.
===== PDF 139쪽 =====
더 나쁜 상태를 상상하라
===== PDF 140쪽 =====
세계적으로 경제가 침체된 지금, 일본도 불황이라는 어둠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한 채 몸부림치고 있다.
내 주변에서도 경기가 좋다는 이야기는 거의 들리지 않고, 거리의 상점가도 어딘가 활기가 없다. 하지만 나는 한편으로 “도대체 무엇이 불황이라는 거지?”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오늘날은 가구 평균소득도 줄고 실업률도 높으니 분명 불황일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어렸던 종전 직후에는 먹을 것도 없어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았다. 그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의 생활은 훨씬 풍족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경기가 나쁘다”고 말하는 것일까.
종전 직후처럼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부족하지 않은데도 “경기가 나쁘다”고 하는 것은 ‘버블 시대’의 경기와 지금을 비교하기 때문이다. 결국 오늘날 일본인은 과거의 영광을 언제까지나 끌어안은 채 ‘잃어버린 20년’ 같은 말을 하고 있을 뿐이다.
불리한 상황에 놓이면 사람은 아무래도 자신의 좋았던 시절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오히려 ‘더 나쁜 상태’를 상상해야 한다.
실수하여 불리한 상황이 되었더라도 “이 정도로 끝나서 다행이다. 잘못했으면 훨씬 더 나빠질 수도 있었다”라고 생각하면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그 여유가 나쁜 상황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찾아낼 계기를 마련해 준다.
===== PDF 141쪽 =====
북쪽의 장
흔들리지 않는 남자
===== PDF 142쪽 =====
좋은 몸가짐이 있으면 역경도 누그러진다
===== PDF 143쪽 =====
내가 생각과 동작에서 모두 “힘을 빼라”라고 하는 것은, 힘을 빼면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이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움직임에 낭비가 적으면 정확하게 표적을 맞힐 수 있다. 승부에서는 이 정확함이 승패를 결정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을 일상생활에 빗대면 ‘좋은 몸가짐’이라고 할 수 있다. 밥을 먹을 때나 옷을 입을 때 “몸가짐이 좋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의 움직임에는 대체로 군더더기가 없다.
‘좋은 몸가짐’을 기본 동작으로 지닌 사람은 상태가 나빠져도 기본이 탄탄하므로 곧바로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나는 대국 중 어려운 국면에 놓일수록 기본 동작을 소중히 한다. 기본인 ‘좋은 몸가짐’을 떠올리면 흐트러진 자신을 바로잡을 수 있고, 어려운 국면에서도 새로운 전망이 열린다.
기본 동작을 익힐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부드러움’이다. 위기에 몰리면 누구나 몸과 마음이 굳는다. 그러나 굳으면 굳을수록 괴로움도 그만큼 커진다. 그럴 때 부드러움을 지니고 있으면 자기 힘으로 괴로움을 덜어낼 수 있다.
평소부터 기본 동작과 좋은 몸가짐, 그리고 부드러움을 소중히 한다면 위기에 빠지기 전에 위험을 피할 수도 있고, 역경에 처하더라도 가장 짧은 길로 빠져나올 수 있다.
===== PDF 144쪽 =====
이어지는 흐름을 소중히 다뤄라
===== PDF 145쪽 =====
나는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을 자연으로부터 배워왔다. 그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하나가 ‘순환’이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순환한다. 헛된 것은 하나도 없다. 생명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
순환, 즉 이어짐은 ‘생명’ 그 자체이며, 이어짐이 끊어지면 ‘생명’도 사라진다. 이처럼 순환과 이어짐은 사람에게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만, 그것은 생사가 걸린 중대한 상황에서만 의식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렇지 않은 일상 속에서 ‘이어짐’을 의식해야 비로소 의미가 있다.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 낮에는 활동하고 밤에는 집에서 쉰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하루의 영위도 ‘생명의 이어짐’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이 ‘이어짐’을 되풀이한다. 그 이어짐은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으므로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하면 그 뒤의 모든 연결도 흐트러진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하나를 느슨하게 다루지 말고 소중히 해야 한다.
나와 도장생들의 관계 역시 ‘이어짐’이 계속되어 왔다. 일을 대하는 방식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좋은 이어짐이 되도록 끈기 있게 힘을 다해야 한다.
===== PDF 146쪽 =====
선입견을 갖지 마라
===== PDF 147쪽 =====
선입견은 참으로 다루기 까다로운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A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고 하자. 당신은 A를 모른다. 하지만 친구가 “A는 까다로운 사람이니 화나게 하지 않도록 해”라고 말하면, 아무래도 ‘그렇구나, A는 까다로운 사람이구나’라는 선입견을 품게 된다.
A가 정말 까다로운 사람이라 친구의 조언 덕분에 곤란을 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A의 성격은 전혀 까다롭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A가 화를 냈던 것은 단지 그 친구가 잘못 대했기 때문일 뿐, A는 사실 매우 온화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당신과 아주 잘 맞는 사람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친구의 말로 만들어진 선입견은 ‘진짜 A’를 이해할 절호의 기회를 당신에게서 빼앗는다.
사람은 살아가다 보면 아무래도 고정관념을 갖게 된다. 마찬가지로 선입견이나 지레짐작도 품기 쉽다.
우리의 선입견은 흔히 세상의 상식에 의해 만들어진다. 사람들은 그런 선입견 때문에 눈앞에 굴러온 기회를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그건 이상하다”라고 말하며 버젓이 놓친다.
자신의 가능성을 끌어내고 싶다면 선입견 따위는 내던지고, 아무것도 덧씌우지 않은 본연의 상태로 모든 것을 바라보아라.
진정한 강함은 상식의 테두리 바깥에 있기 때문이다.
===== PDF 148쪽 =====
적은 자기 안에 있다
===== PDF 149쪽 =====
누군가와 한 ‘약속’이 사실은 자신과의 약속인 것처럼, ‘승부’에서 정말로 싸우는 대상 역시 ‘상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나는 대타로 활동하던 시절 수많은 강적과 싸웠지만, 대국 중에는 언제나 그들 뒤에 있는 ‘자기 자신’을 보았다. 상대와 싸우면서 동시에 자신과도 싸웠다. 그 시절의 대국은 늘 그런 느낌이었다.
승부에서 진정으로 이겨야 할 대상은 상대가 아니라 자신이다. 설령 승부에서 이겼더라도 자신을 이긴 끝에 얻은 승리가 아니라면 진정한 ‘승리’라고 할 수 없다.
‘자신을 이긴다’는 것은 승부를 속이지 않고 엄격한 자세로 계속 싸우는 것이다.
자기보다 약한 상대와 아무리 싸워도 자신을 이겼다고 할 수 없다. “이 사람을 이기기는 어렵겠다”라고 느껴지는 강한 상대와 싸워야 꾸밈없는 본연의 자신이 끌려 나오고, 남자의 강함도 갈고닦인다.
어떤 승부에서 이겼다고 그 자리에서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자신을 이겼다고 하기 어렵다.
‘승리’는 ‘끝’이 아니다. 그곳에는 언제나 다음의 엄격한 싸움을 향한 ‘시작’이 있다. 끊임없이 엄격한 싸움에 도전하는 자세야말로 ‘자신을 이긴다’는 것이다.
===== PDF 150쪽 =====
힘든 일을 즐겁게 하라
===== PDF 151쪽 =====
스포츠 경기의 우승 인터뷰에서 “고된 훈련을 견뎌왔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습니다”와 같은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괴로움과 고통을 견뎠다고 해서 그 뒤에 반드시 좋은 결과가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많은 일본인은 “고생하면 나중에 좋은 일을 누릴 수 있다”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믿음일 뿐이다. 애초에 사람이 스포츠를 하는 것은 그 종목을 즐기는 일이 재미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어느새 ‘승리’라는 목표가 ‘스포츠를 즐긴다’는 본래의 의미를 뛰어넘고, 사람은 ‘승리’를 손에 넣기 위해 ‘고된 훈련을 견디는 일’을 되풀이하게 된다.
고된 훈련을 견뎌 승리를 얻는다면 다행이지만, 지고 나면 남는 것은 ‘괴로움’뿐이다. 그런 마음으로 훈련을 계속하면 머지않아 그 종목 자체가 싫어진다. 너무도 당연한 흐름이다.
나는 예전부터 엄격한 자세로 싸움에 계속 도전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괴로움을 참는다’는 엄격함이 아니라 ‘자신에게 지지 않는다’는 엄격함이다.
“이건 정말 힘들겠군” 싶은 일도 거기에 놀이의 감각을 조금 더하면 즐거움으로 바뀐다. 힘든 일을 힘들게 하면 괴로워질 뿐이다. 힘든 일을 즐겁게 해야 사람은 성장한다.
===== PDF 152쪽 =====
불의의 공격에도 흔들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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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에는 ‘기습’이 따르기 마련이다. 다만 기습을 당했을 때 그것을 ‘기습’으로 느끼는 것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행동을 미리 예상했다면 더는 기습이 아니다.
경험을 더 많이 쌓을수록 예상의 범위는 점점 넓어지고, ‘예상 밖’의 공격을 받는 일은 줄어든다. 다시 말해 엄격한 싸움을 계속할수록 그 사람에게 ‘기습’이나 ‘불의의 공격’은 줄어든다.
자기보다 약한 상대와만 싸우고 편한 길만 고른다면, 그 사람의 인생에서 불의의 공격이 줄어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나는 예전부터 ‘편한 길’과 ‘엄격한 길’이 있으면 기꺼이 엄격한 길을 골라왔다. 엄격한 길에서 마주치는 어려움과 벽이 많을수록 더 많은 것을 알아차려야 하고, 그만큼 궁리도 요구된다.
그 분야의 ‘프로’라 불리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의 눈에는 매우 어려워 보이는 일도 아무렇지 않게 해낸다. 그들이 ‘엄격한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려운 길을 선택하면 오히려 일을 수월하게 해낼 수 있게 되고, 보통 사람이라면 예상 밖이라고 여길 일도 침착하게 받아들일 만큼 자신의 그릇이 넓어진다.
===== PDF 154쪽 =====
금지하는 것을 줄여라
===== PDF 155쪽 =====
나는 어렸을 때 날마다 위험한 놀이만 했다. 떨어지면 죽을 수도 있는 고가 구조물에 매달려 놀거나, 빠져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물살이 센 강에서 헤엄을 쳤다. 그러나 그런 위험한 놀이를 통해 나는 ‘삶’을 가까이 느꼈고, 살아가는 데 중요한 생각과 움직임을 어느새 배웠다.
내가 어렸을 때와 비교하면 요즘 아이들은 “거기서 놀면 안 돼”, “그런 놀이를 하면 안 돼”라는 말을 들으며 온갖 행동을 금지당한다. 이 모든 것은 어른들이 책임을 피하려고 아이들을 위험에서 멀리 떼어놓는 예방선을 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위험에서 멀어진 아이들은 인간이 본래 지녔던 ‘생명력’을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잃어갈 것이다. 금지하는 것이 지나치게 많으면 인간은 약해진다.
면역력은 세균과 접촉하면서 높아진다. 무균실 같은 현대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은 생명력과 면역력을 계속 잃을 수밖에 없다.
위험한 것을 모조리 ‘안 된다’고 금지하지 말고, 조금 더 느슨하고 너그럽게 대하면 어떨까. 그런 넓은 품이 분명 한 인간으로서의 강함을 길러줄 것이다.
===== PDF 156쪽 =====
단번의 역전을 노리지 마라
===== PDF 157쪽 =====
계속 지다 보면 사람은 어떻게든 기사회생의 ‘한 방 역전’을 노리고 싶어진다. 그동안의 손실을 단번에 되찾고 싶은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쌓여온 패배를 한꺼번에 쓸어내려는 대담한 행동은 때로 용감함을 넘어 무모함이 되기 쉽다.
“더는 질 수 없다”, “이제 물러설 곳이 없다”라는 상황에 빠지면 눈앞의 승리와 이익에만 정신을 빼앗겨 주변을 보지 못한다.
승부에서 이기는 기본은 ‘얼마나 많이 알아차리는가’에 달려 있는데, 주변을 보지 못하는 상태로 이길 수 있을 리 없다.
한 방 역전을 노린 대담한 행동이 좋은 결과를 낼 가능성은 매우 낮다. 대부분 그런 행동은 실패로 끝난다. 나는 그런 식으로 패배하는 사람을 지금까지 셀 수 없이 보아왔다.
큰 것만 노리는 한 방 역전의 발상은 승리만을 바라는 욕망의 수렁으로 사람을 끌어들인다. 그 수렁에 빠지지 않으려면 계속 지고 있을 때일수록 작은 승리를 하나씩 쌓는 것이 중요하다.
승부 속에서 기회는 반드시 돌아온다. 그때에 대비해 작은 승리로 발판을 굳혀두는 것이 올바른 ‘역전의 발상’이다.
===== PDF 158쪽 =====
위기를 벗으로 삼아라
===== PDF 159쪽 =====
“막다른 상황에 몰리면 마음을 탁 놓아버려라”라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나는 승부에서 그렇게 체념하듯 마음을 놓아버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포츠 선수가 “마음을 놓았더니 좋은 결과가 나왔습니다”라고 말할 때도 있지만, 그것은 체념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전환’을 잘해낸 결과다.
체념하고 마음을 놓아버리는 모습은 언뜻 결연하고 깨끗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그 자리의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궁지에서 달아나는 일이다. 승부의 현장에서 도망치는 사람에게 기회는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이더라도 어딘가에는 반드시 돌파구가 있다. 궁지에 몰리면 아무런 수도 남지 않은 듯 느껴지지만,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찾으면 작게나마 빠져나갈 길을 반드시 찾아낼 수 있다.
궁지에서 돌파구를 찾아내는 힘을 기르려면 평소부터 작은 것을 알아차리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작은 것을 알아차리는 감각을 익히면 머지않아 승부 흐름의 미묘한 변화도 감지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절체절명의 상황을 ‘위기’가 아니라 ‘나를 성장시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내게 위기는 적이 아니다. 위기는 벗이며, 내 편이며, 스승이다.
===== PDF 160쪽 =====
과거의 영광은 버려라
===== PDF 161쪽 =====
언론은 대타로 활동하던 시절 무패였던 나를 ‘20년간 무패의 작귀’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내 무패 기록을 자랑한 적도 없고, 뽐낼 마음도 없다.
물론 그 시절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는 생각한다. 그렇다고 그것을 계속 끌어안거나 붙잡고 있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시절의 일은 떠올리고 싶지 않다고까지 생각한다. 내게는 ‘지금’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보면 과거의 영광에 매달리는 사람이 많다. 자신의 과거 업적을 내세우거나 자랑하는 것은 멋없는 일이다.
과거에 한 일을 자기 안에 소중히 간직하는 것은 괜찮지만, 그것을 과시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이다.
과거의 영광을 계속 끌어안는 것은 지금의 자신을 쓸쓸하게 느끼는 동시에, 과거 자신의 삶에 납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과거의 ‘충실했던 한순간’을 되돌아본다.
20대에는 20대의 삶이 있고, 30대에는 30대의 삶이 있다. 그렇게 인생의 한순간 한순간을 자기답게 진지하게 살아간다면 과거를 되돌아보지 않게 된다.
“‘지금’에 온 힘을 다하고, 그 순간의 내가 전부다”라는 방식으로 살아간다면 과거도 미래도 상관없어진다.
===== PDF 162쪽 =====
좋고 나쁨의 파도를 작게 만들어라
===== PDF 163쪽 =====
자연계에 순환이라는 ‘흐름’이 있듯이, 이 사회에도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도 흐름은 존재한다.
흐름은 그때그때 방향을 바꾼다. 좋은 흐름일 때도 있고 나쁜 흐름일 때도 있다. 사람에게 호조와 부진의 물결이 찾아오는 것은 그런 흐름이 있기 때문이며, 늘 잘될 수도 늘 부진할 수도 없다.
나 역시 좋은 흐름을 타는 때가 있는가 하면, 흐름이 썩 좋지 않아 고생할 때도 있다. 나는 그런 자신의 호조와 부진의 물결을 느꼈을 때, ‘부진이야말로 내 실력’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그러나 세상 사람 대부분은 잘될 때의 자신을 실력이라 착각한다.
좋을 때의 자신만을 기준으로 삼으면, 흐름이 나빠졌을 때 “이건 내 실력이 아니야”라는 부정이 생긴다. 그 결과 부진한 자신과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고, 거기서 꺾이거나 도망치게 된다.
‘부진이야말로 내 실력’이라고 생각하면, 잘될 때 우쭐할 일도 없고 반대로 “뭔가 꼬이고 있군” 하며 자신의 처지를 탓할 일도 없다. 부진을 없애려 하기보다, 주어진 상황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
중요한 것은 ‘부진의 물결을 작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려면 늘 감사하는 마음을 품고, 자신도 주변 사람도 기분 좋게 지내도록 해야 한다.
===== PDF 164쪽 =====
‘하면서’의 감각을 받아들여라
===== PDF 165쪽 =====
일본에는 한 가지 일에 집중해 몰두하는 것이 좋다는 풍조가 있다. “무언가를 하면서 다른 일을 함께 해서는 좋은 결과를 낼 수 없다”는 식의 생각은 별로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하면서’라는 태도가 인간의 폭을 넓혀 주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려 하면 당연히 그 일만 의식하게 되어 주변이 보이지 않는다. 승부에서도 눈앞의 일에 지나치게 사로잡히면 승리를 여는 열쇠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한편으로는 다른 것도 하는’ 방식을 택한다.
한 가지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사람은 “왜 이렇게 중요한 일을 하지 않는 거야?”라며 자주 실수를 지적한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잘못된 ‘집중’일 것이다.
마작에서도 약한 사람일수록 버릴 패와 이른바 ‘버려진 패’만을 의식하기 때문에 판의 흐름, 운의 흐름, 사람 마음의 흐름 같은 것을 읽지 못한다.
평소 실수하기 쉬운 사람일수록 일상 속에 ‘하면서’의 감각을 받아들이면 좋다. 그러면 실수는 차츰 줄어들 것이다.
===== PDF 166쪽 =====
움직임을 멈추지 마라
===== PDF 167쪽 =====
궁지에 몰렸을 때 그대로 망가져 버리는 사람도 있고, 거기서 벗어나 새로운 전개로 나아가는 사람도 있다. 두 사람의 차이는 대체 무엇일까.
“이제 틀렸다”고 느끼는 순간 움직임을 멈추기 때문에 어려움을 이겨 내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 놓인 상황을 타개하고 싶다면 어떤 형편에 처했든 움직임을 멈춰서는 안 된다. 어떤 문제든 필사적으로 찾으면 반드시 돌파구가 하나쯤은 있다. 그러니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저 움직이기만 해도 안 된다. 오직 한 방향만 고집스럽게 향해서는 안 된다. 그 방향이 틀렸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마음이 꺾일 듯해도 좋다. 놓칠 듯한 아주 작은 일에서라도 우선 행동을 일으켜라. 사소한 것이라도 무엇이 계기가 될지는 알 수 없다.
궁지에 처하면 형세를 단숨에 뒤집고 싶어 큰 수를 두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런 벌레 좋은 수는 좀처럼 찾을 수 없다. 작은 움직임을 몇 번이고 겹치면 어느 순간 뜻밖의 큰 흐름이 일어날 수 있다. 그것만 믿고 계속 움직인 사람만이 궁지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 PDF 168쪽 =====
순간적인 힘이 운을 끌어당긴다
===== PDF 169쪽 =====
승부에는 흐름이 있어 그 흐름이 내 쪽으로 올 때도 있고 상대 쪽으로 가 버릴 때도 있다.
승부의 흐름은 말하자면 운의 흐름이다. 야구라면 안타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타구가 안타가 되고, 기회가 찾아오는 식이다. 이것이 운의 흐름이 내 쪽으로 와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모처럼 운이 내 쪽에 왔는데도 거기서 고민하고 생각하다가는 운이 어느새 자리를 떠나 버린다.
운을 내 것으로 만들려면 찾아온 운에 순간적으로 응해야 한다. 순간적으로 오는 운에는 이쪽도 순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러나 정보 과잉의 현대사회를 사는 사람들은 순간적인 판단을 내리기 어려워하는 듯하다. “틀리고 싶지 않다”, “손해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이 많아 정보와 지식에 기대고 오래 생각한다. “이익을 보고 싶다”, “누구보다 돈을 모으고 싶다”는 생각이 강할수록 오히려 실제의 운을 놓친다.
정보에 의지하지 않는 순간의 판단력을 기르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느끼는 힘’이다. 문명이 발전하며 잃어버린 ‘느끼는 힘’을 되살리면 당신도 운을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 PDF 170쪽 =====
80퍼센트의 승리를 추구하라
===== PDF 171쪽 =====
나는 무슨 일을 하든 ‘여덟 할’이라는 감각을 소중히 여긴다. 승부할 때도 완벽한 100퍼센트의 승리를 바라지 않고, 100퍼센트의 힘으로 싸우면서도 마음으로는 80퍼센트쯤의 힘으로 싸운다고 느끼려 한다.
욕심에 사로잡힌 사람은 열이면 열, 완전한 승리를 원한다. 그러나 100퍼센트를 넘는 승리를 원할수록 마음의 여유를 잃는다.
배부른 상태로 80퍼센트의 승리를 추구하면 마음에 20퍼센트의 여유가 생긴다. 승부의 주위를 바라보는 ‘전체관’을 지니지 않으면 이길 수 없지만, 완승을 원하며 눈앞의 승부에 온 정신을 쏟으면 여유가 사라져 그 전체관도 어느새 부분적인 시야로 바뀐다.
언제나 20퍼센트의 여유를 지니면 어떤 상황에서도 전체관을 잃지 않고 싸울 수 있다. 설령 실수하더라도 틈이 생기는 즉시 고칠 수 있다.
다만 내가 말하는 ‘80퍼센트의 승리를 추구한다’는 것은 80퍼센트의 힘만 내라는 뜻이 아니다. 100퍼센트의 힘을 다하되, 어디까지나 마음가짐은 “80퍼센트의 힘으로 싸우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 중요하다.
===== PDF 172쪽 =====
두 번째, 세 번째 화살을 준비하라
===== PDF 173쪽 =====
승부에 강한 사람은 주변 상황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전체관을 지니고 있다. 전체관이 있기에 눈앞의 일에 갇히지 않고 전체를 내다보며 다음 준비를 할 수 있다.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의 차이는 첫 번째 화살을 쏜 뒤 두 번째, 세 번째 화살을 준비할 수 있느냐에 있다. 미리 준비한 화살이 많을수록 그 사람의 싸움에는 폭이 생기고 온갖 상황에 대응할 수 있다.
마작에서도 승부에 강한 사람은 준비한 화살을 절묘한 순간에 잇달아 꺼낸다. 크게 이기고 있는 때에도 방심하지 않고 전체의 흐름을 본다. 뜻밖의 일격을 맞아도 당황하거나 흐트러지지 않는다.
화살을 준비하는 것은 이길 때뿐 아니라 질 때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승부의 흐름을 급격히 바꾸기는 무척 어렵지만, 그 흐름을 서서히 바꾸는 일은 약간의 궁리로 가능하다. 그 작은 궁리를 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두 번째, 세 번째 화살이다.
화살을 제대로 준비한 사람은 A가 안 되면 B, B가 안 되면 C라는 여러 방식을 꺼낼 수 있다. 이는 승부뿐 아니라 일을 원활하게 추진하는 데에도 중요한 자세일 것이다.
===== PDF 174쪽 =====
약점을 극복하면 가능성이 곱절로 넓어진다
===== PDF 175쪽 =====
인간이라면 서툰 것이 하나쯤 있는 게 당연하다. 그것이 음식이 아니라 일이나 인간관계라면 그대로 내버려 두어도 되는 걸까.
나에게도 서툰 것은 여럿 있다. 그러나 나는 타고난 성미가 ‘서투른 것을 오히려 좋아하는’ 쪽이라, 피하거나 멀리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마주해 왔다.
그렇게 살아왔기에 서툰 일에서 도망치기만 해서는 얻을 수 없는 여러 가지를 배웠다. 서투름을 극복하면 자신의 적중 지점이 점점 넓어진다. 그동안 맞힐 수 없던 공도 맞힐 수 있게 된다. 장점은 그냥 두어도 마음대로 자라지만, 단점을 극복하면 그것은 자신의 커다란 재산이 된다.
잘하는 일로 얻는 것은 셋 더하기 셋처럼 단순한 덧셈으로만 늘어난다. 그러나 서툰 것을 이겨 낸 뒤 얻는 것은 3 곱하기 3처럼 넓어진다.
자신의 가능성을 넓히려면 서툰 일과 적극적으로 부딪히는 것이 중요하다.
===== PDF 176쪽 =====
불안을 느끼면 즉시 움직여라
===== PDF 177쪽 =====
“사쿠라이 씨는 불안을 느끼지 않나요?”라는 질문을 받곤 한다. 대답은 아니다. 나도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불안을 느낀다. 대타로 나서던 시절에도 불안과 자신감 사이를 끊임없이 오갔다.
사람은 살아 있는 한 불안과 인연을 끊을 수 없다. 다만 불안은 시간이 지날수록 크게 부풀어 오르는 것이므로 가능한 한 빨리 대처해야 한다. 그것이 중요하다.
불안을 내버려 두면 점점 커져 결국 ‘공포’로 변한다. 불안에서 달아난다는 것은 그대로 놓아둔다는 뜻이므로, 도망치거나 멀리해서는 안 된다. 불안을 느끼면 즉시 대응하는 것이 무엇보다 좋은 불안 대처법이다.
불안이 거대해져 공포로 변하면 대처하기 어려워지는 한편, 공포에 사로잡히면 자신을 잃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더는 손쓸 수 없다.
불안은 작을수록 대처하기 쉽다. 그러니 불안을 느끼면 어쨌든 움직여라.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무엇이든 좋으니 움직여라. 움직이면 불안은 옅어지고, 발걸음을 조금씩 내딛는 사이 불안 해소라는 목표에 가까워진다.
불안을 느끼면 즉시 움직여라. 이것이 불안을 다루는 철칙이다.
===== PDF 178쪽 =====
슬럼프는 내버려 두어라
===== PDF 179쪽 =====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런 나쁜 상태가 오래 이어지는 것을 흔히 “슬럼프에 빠졌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한번 슬럼프라는 것을 의식하면 그 말의 이미지에 갇혀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한다. 많은 사람은 슬럼프를 느끼면 나쁜 상태를 타개하려고 이전보다 훨씬 더 몸과 마음을 혹사한다.
그러나 슬럼프는 육체나 정신의 피로 때문에 생긴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몸과 마음을 한층 더 혹사해서 어떻게 나아질 수 있겠는가. 그런 행동이 역효과라는 사실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분명할 것이다.
슬럼프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길은 슬럼프를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다. 하던 일에서 잠시 떨어져 전혀 다른 일을 해보라. 그렇게 마음을 전환하는 것이 슬럼프를 벗어나는 데 가장 효과적이다.
세상 모든 것은 하루하루 변하고 있다. 물론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몸이 변하면 생각도 변한다. 슬럼프 역시 인간의 변화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바꾸어라. “심각해!” 하고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 PDF 180쪽 =====
불운과 행운을 구분하라
===== PDF 181쪽 =====
운에는 행운과 악운이 있는데, 지금은 행운보다 악운이 위세를 부리는 시대다. 예전 같으면 악의 대명사였을 법한 건달이 이제는 평범한 세상에도 당연하다는 듯 존재한다.
악운이 세상에 흔해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무엇이 행운이고 무엇이 악운인지조차 제대로 가려내지 못한다.
악운은 다른 사람의 운을 희생하여 성립한다. 인간의 약한 틈을 파고들어 들키지 않게 스며든다. 악운에 갇힌 사람은 남을 희생시키는 데 거리낌이 없어지고, 그 희생으로 성공과 이익을 손에 넣는다.
현대사회의 악운은 극단적인 효율주의와 합리주의에서 생겨나는 경우가 많다. ‘편함’과 ‘편리함’만 지나치게 추구하면, “내 목적을 이루려면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도 좋다”는 발상에 빠진다. 그런 데서 악운이 생겨난다.
‘나쁜 돈은 몸에 붙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만, 악운도 마찬가지로 몸에 붙는 것은 아니다. 한순간 붙었다고 생각해도 결코 오래가지는 않는다.
나쁜 일을 하면 그 몫은 반드시 재앙이 되어 돌아온다. 인생의 수지는 실제로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
===== PDF 182쪽 =====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만들어라
===== PDF 183쪽 =====
아무 일에도 동요하지 않는 사람은 언뜻 매우 침착해 보인다. 그러나 몸은 움직이지 않아도 그 안의 마음은 흔들리고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음은 늘 흔들리며 움직인다. ‘움직이지 않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흔들림이 적게 느껴질 뿐, 마음은 분명 흔들리고 있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 역시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움직이지 않는 사람’처럼 보일지 몰라도, 예전과 마찬가지로 마음은 흔들린다.
그렇다면 왜 다른 사람의 눈에는 흔들리지 않는 사람으로 보이는가. 그것은 분명 마음의 균형을 잡는 방법에 이유가 있을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란 자신의 감정을 억눌러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인간에게는 ‘감정’이 있기에 마음이 흔들리고 움직이는 것이 당연하다.
문제는 마음을 흔들리지 않게 만드는 데 있지 않다. 흔들린 마음을 어떻게 본래 상태로 되돌릴 것인가에 있다. 지식이나 욕망에 갇히면 그것만으로 마음의 균형은 크게 무너진다. 원망이나 질투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지배된 사람 또한 마음의 균형이 크게 깨져 있다.
마음의 중심을 언제나 한가운데 두고, 흔들려도 곧 돌아올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 두는 것. 그것이 진정한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다.
===== PDF 184쪽 =====
미완을 좇아라
===== PDF 185쪽 =====
내 책을 읽은 사람이 “사쿠라이 씨는 깨달음을 얻었군요”라고 말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말도 안 된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며 무언가를 깨달았다고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앞으로도 수명이 다할 때까지 내가 무언가를 깨닫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인생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계속 뒤쫓다가 그대로 끝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깨달음에 이를 수도, 완성할 수도 없다.
작귀류 마작도 인생과 마찬가지로 평생을 바쳐도 끝까지 따라갈 수 없는 것을 뒤쫓는다. “다 따라잡았다”, “완성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대상은 모습을 바꾸거나 무너지거나 사라져 버린다.
나는 작귀류가 백 년이 지나도 절대로 완성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를 비롯해 작귀류를 이루는 것은 늘 완성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래도 나는 그것이 즐겁다. “할 수 있다”고 믿으며 무언가를 계속하는 것보다 “할 수 없다”고 알면서도 계속하는 데 의미가 있다.
결과가 좋아지는가 나빠지는가는 알 수 없다. 오늘도 도장에서는 모두 작귀류를 뒤쫓고 있다. 남자라면 완성되지 않은 것을 뒤쫓는 일을 허무하게 느끼거나 불모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완성되지 않은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곳에 배움이 있고 사람으로서의 성장도 있다.
===== PDF 186쪽 =====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라
===== PDF 187쪽 =====
‘죽음’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찾아온다. 나이가 들수록 누구나 그렇게 느끼듯 나도 요즘은 예전보다 죽음을 가까이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남은 수명이 몇 달뿐입니다”라는 말을 들어도 나는 크게 놀라지 않을 것이고, 다가오는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내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다. 죽음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죽음이 괴로운지 고통스러운지, 아니면 즐거운지 기분 좋은지 경험해 보지 않았으니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것을 굳이 두려워하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
나는 지금까지 내 인생에 만족한다. 삶에 만족을 지나치게 요구하지 않았기에 불만도 없다. 나에게는 “나는 이미 충분히 해왔다”는 납득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삶과 죽음을 나누어 생각하지만, 내 안에서는 삶과 죽음이 하나다. 그러니 어느 쪽에 집착할 이유도 없다.
자신이 태어난 순간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기억하지 못하므로 거기에 집착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그렇다면 아무도 경험한 적 없는 죽음에 깊이 사로잡힐 필요도 없다.
===== PDF 188쪽 =====
개인은 전체이며, 전체는 개인이다
===== PDF 189쪽 =====
“개인은 전체가 되고, 전체는 개인이 된다.” 내가 늘 도장생들에게 되풀이하는 말이다. 개인주의가 만연해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늘어난 요즘 세상에서는 ‘개인’만 의식할 뿐 ‘전체’를 의식하는 사람이 적다.
‘개인’은 전체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고, 전체는 개인이 하나하나 모여 이루어진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개인’과 ‘전체’로 성립한다.
개인과 전체를 같은 시점에서 균형 있게 바라보려면 ‘전체관’을 지녀야 한다. 전체관이란 쉽게 말해 ‘당신이 있으면서 내가 있다’는 감각이다. 그 틀을 넓히면 자신도 자연계 생물도 모두 지구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전체관이 자라면 서로를 느끼고 함께 살아가는 감각도 생긴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면 무엇을 해도 좋다”는 말은 일부밖에 보지 못하는 사람이 하는 말이다. 전체관이 있는 사람이라면 “남에게 기쁨을 주자”는 생각이 먼저 들 것이다.
“개인은 전체가 되고, 전체는 개인이 된다.” 이 말을 마음 한구석에 늘 두기 바란다. 치우친 오늘날 사회의 균형을 바로잡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이다.
===== PDF 190쪽 =====
[후기]
중년을 넘기고서야 갑자기 옷차림을 신경 쓰지 않게 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을 두고 세상 사람들은 “외모에 신경 쓰지 않게 되면 끝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도 ‘끝’이라고까지는 말하지 않지만, 외모는 어느 정도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자리와 공간의 분위기, 시류 같은 것에 외모를 맞추는 일은 중요하다. 다만 그 자리의 분위기에 맞추더라도 어울리지 않고 멋없을 수 있다. 너무 억지로 맞추어도 그 자리의 공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멋은 나오지 않는다. 그 분위기에 맞추려면 외모와 복장뿐 아니라 기분과 정신도 맞출 필요가 있다.
내가 보기에 세상 남자 대부분은 ‘멋을 내려고’ 할수록 오히려 멋없어진다. 진정한 ‘멋’은 ‘자연스럽게 맞아드는’ 데서 생겨난다.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멋을 부리고, 자신을 잘 보이고 싶어 멋을 부린다. 그런 식의 멋내기는 진정한 멋이 몸에 배지 않는다.
자연계 생물은 본능적으로 ‘자연에 맞추는’ 일을 한다. 아니, 본능만으로 움직이기에 이미 자연과 맞아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바다와 산 같은 자연을 무척 좋아하고, 그곳에서 사는 야생 생물을 보면 ‘멋지다’고 느낀다.
반면 우리 인간은 지식과 욕망 같은 본능과 동떨어진 것을 지나치게 많이 지닌 탓에 자연과 멀어진 존재가 되었다. 이제 와서 ‘자연에 맞추는’ 일을 해내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남자라면 ‘멋있어지고 싶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대단히 멋없는 일이다.
어릴 적 내 주변에는 ‘남자다운 남자’가 많이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그 등에서 남자의 각오를 배어 나오게 하는 남자들이었다. 나는 그런 어른들에게서 남자의 냄새를 느끼며, 어린아이 나름대로 그들에게 다가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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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은 그런 남자다운 냄새를 풍기는 남자가 멸종 위기종처럼 되어 버렸다. 주변에 ‘남자다운 남자’가 없는 시대에 남자다움을 배워 가는 일은 이미 어려운 과업이다.
그렇기에 더욱 ‘남자다운 남자’가 되기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자연에서 많은 것을 배웠듯 인간사회의 틀을 뛰어넘은 곳에서 한 인간으로서, 한 남자로서 살아가는 데 중요한 실마리가 수없이 펼쳐져 있다.
남자를 단련한다는 거창한 일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야생 생물처럼 자연의 이치를 따르며 사물을 단순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그곳에 자신만의 길이 보일 것이다. 진정으로 필요한 ‘남자다움’은 틀림없이 그 길 위에 있다.
사쿠라이 쇼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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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
구성: 하기와라 세이이치로(萩原晴一郎)
편집 협력: 다카기 마사아키(高木真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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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사쿠라이 쇼이치(桜井章一)
도쿄도 시모키타자와 출생. 대학 시절 마작을 시작해 뒷세계의 대타 선수로 데뷔했다. 이후 은퇴할 때까지 20년 동안 무패를 기록하며 ‘작귀(雀鬼)’라는 별명을 얻었다.
은퇴한 뒤에는 ‘작귀류 마작도장 패의 소리’를 열고, 마작을 통해 사람으로서의 길을 후배들에게 가르치는 ‘작귀회’를 시작했다. 그의 삶을 모델로 한 영화와 만화는 셀 수 없이 많고, 강연회 등에서 ‘작귀 철학’을 이야기할 기회도 많다.
저서로 《운을 부르는 말》, 《남자의 그릇》, 《상식에 사로잡히지 않는 삶》 등 다수가 있다. 가도카와쇼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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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정보]
남자를 단련하는 말
사쿠라이 쇼이치
가도카와 e문고
2013년 6월 30일 발행
발행인: 시시도 겐지(宍戸健司)
발행처: 주식회사 가도카와쇼텐
우편번호 102-8078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 후지미 2-13-3
http://www.kadokawa.co.jp
© Shoichi Sakurai 2013
이 전자책은 다음 종이책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가도카와쇼텐 단행본 《남자를 단련하는 말》
2013년 4월 10일 초판 발행